김일영 목사(동행교회)

하나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복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0)

▲ 김일영 목사(동행교회)

11월을 맞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들녘에 누렇게 익은 벼를 바라보면서,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라는 찬송을 부르노라면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잠언 23장 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인격의 품성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9절에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결과가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했습니다. 생각의 크기가 그 사람의 그릇 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곧 인격이 되고 삶이 되므로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 속에는 추수하는 장면이 나타나 있어서 요즘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추수하는 모습은 있는데 ‘추수감사’라는 단어는 빠져 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하나님 앞에 어리석다는 평가를 받았을까요? 이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아쉽다’는 생각과 ‘그래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교차하기 마련입니다. 영어 단어 중에 ‘감사하다(thank)’라는 말은 ‘생각하다(think)’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크신 은혜를 생각하노라면 우리 마음 가운데서 자연스레 감사하고픈 심정이 우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부족한 것은 생각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 부자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던 자였습니다. 마침 그해 농사가 아주 잘 되어서 밭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거두어들일 곡식이 너무 많아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부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래, 이렇게 하자,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자. 그리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새로 지은 큰 창고에 쌓아 두어야지.”(18절)

그 부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몹시 흥분이 되어서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자기 영혼을 향해 속으로 중얼거려 봅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절)

그런데 이렇게 큰 흥분과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그를 바라보시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이 부자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무척 똑똑하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오늘 밤에 죽을지도 모르고 혼자 온갖 계획을 세우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빗대어 로마서 1장 2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처럼 허무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라는 생각은 했지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추수를 했지만 그의 사전에는 ‘추수감사예배’, ‘추수감사예물’이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요, 필요한 물질을 주신 분이시며, 오늘 밤에 자신의 영혼을 거두어 가시는 생명의 주인이신데, 안타깝게도 그 어리석은 부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러한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인생과 생각 가운데 하나님은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불행의 씨앗이자 파멸의 원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각 속에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생각이 들어 있을까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아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을 준비가 안 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농사 준비는 늘 열심히 했고, 돈 버는 준비는 빈틈이 없이 철저하게 했습니다. 창고를 크게 지을 계획과 준비도 했고, 멋지게 먹고 마시고 즐길 궁리까지는 그럴싸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준비해 두었어야 할 죽음의 준비는 전혀 해놓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실 때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부자는 그날 밤에 전혀 준비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인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삶이 너무 바쁘고 분주하여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미리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9988234’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고 2~3일 아프다가 죽었으면(4)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시시각각으로 죽음이라는 실체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쁘면 여행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때가 오면 죽음을 향한 여행은 아무리 바빠도 떠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죽음의 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늘 죽음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1절 말씀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 말씀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죽음 앞에 직면해 있는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교만하면 안 됩니다. 방심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음 준비를 잘하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인생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 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평소에 예수님을 잘 믿고, 믿음 준비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심령이 새로워져서 진실하고 경건하고 충성스런 삶을 사는 가운데 죽음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생각

오늘 본문의 부자 비유는 자연스레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의 인생관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던 사람입니까. 그는 물질만능주의 인생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둔 것에 만족해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직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쾌락주의 인생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이기주의 인생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든 생각 속에 온통 ‘내’가 가득 차 있습니다. ‘나’ 중심의 사람입니다. “내가, 내가, 내 곳간, 내 모든 곡식과 물건, 내가, 내 영혼” 짧은 본문 속에 이처럼 ‘내’라는 말이 무려 여섯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 속에는 오직 나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그의 생각 속에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세속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노라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옵니다. 갑작스레 죽음이 닥치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그제야 안타깝게 울부짖으며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부디 세속적인 인생관을 버리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각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오직 주를 위해 믿음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어리석은 한 부자의 허망한 생각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농사가 잘 되어 큰 소출을 올린 것에 대해 흥분하며 창고를 새로 지을 생각도 했고, 이제는 평안하게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길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할 줄 몰랐고,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오늘 밤에 자기가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 준비, 창고를 지을 준비, 인생을 즐길 준비는 분주히 하면서도 죽을 준비, 하나님 앞에 설 준비는 전혀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내가 언젠가 죽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도 의식하며 우리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 보시기에 더 복되게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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