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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깨닫는 은혜, 표현하는 사랑 (눅 7:29~50)김일영 목사(동행교회)
  • 김일영 목사(동행교회)
  • 승인 2018.11.01 09:40
  • 호수 2174

주님께 받은 은혜 적극적으로 삶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7:50)

▲ 김일영 목사(동행교회)

한국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좋아도 좋다고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데 대단히 서툽니다. 받은 은혜가 감사해도 감사하다고 표현을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회하면서 표현할 줄 모르는 성도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예배시간마다 외치게 한 구호가 있었습니다. “무표정은 범죄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중죄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구호를 외치게 했겠습니까.

누가복음 7장에는 한 여인이 죄 사함 받은 은혜를 깨닫고 주님 앞에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감사의 달’ 11월을 맞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체험한 은혜에 대한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첫째로, 예수님은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을 싫어하시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믿음의 사람들보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35절까지의 말씀은 그 당시 사람들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성향을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31절과 32절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의 소극적인 성향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 비유는 당시 장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던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신랑각시가 결혼하는 날, 피리를 불면 하객들이 춤을 추듯이 아이들 중에 한편에서 피리를 불면 다른 한편의 아이들은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너희들, 우리가 피리를 부는데 왜 춤을 추지 않는 거야?” 따져 묻는 것입니다. 반응이 없다는 것이지요. 한 편에서 곡을 하면 한 편에선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니, “우리가 곡을 하는데 너희들은 왜 울지 않는 거야?”하고 따져 묻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시는데도 그 당시 사람들이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들어도 “아멘”하는 반응이 없고, 회개를 외쳐도 회개치 않는 지극히 소극적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여자는 비록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았으나 예수님께 은혜를 받은 후 죄사함 받은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적극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비싼 향유 옥합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울면서 눈물로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집 주인인 바리새인 시몬은 그녀와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도 발 씻을 물조차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소극적인 모습입니까.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은 이런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을 싫어하시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33절과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부정적인 성향을 지적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는구나”

세례 요한이 금식해도 문제를 제기하고, 예수님께서 열심히 맛있게 드셔도 문제시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지극히 부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먹어도 탈, 안 먹어도 탈이었습니다. 빨간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매사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시몬 역시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은 여인의 행동에 대해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여인의 행동을 용납하신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태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자기가 지은 수 많은 죄를 사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던지,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담겨진 대로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이 담겨져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까? 아니면 주변을 향한 불만과 원망입니까?

예수님은 부정적인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대단히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깨달은 은혜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여인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합니까?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며,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사해 주신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늘 죄책감에 눌려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 죄로부터 해방된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죄 많은 나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버림받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 같은 죄인에게도 죄사함 받을 길이 있고 구원 받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새 사람이 되어 인생을 새 출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죄사함 받은 그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여인처럼 죄사함 받은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죄사함 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올 한 해도 매순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는 자기가 받은 은혜에 표현하고 싶습니다. 본문의 여인은 주님께 받은 죄사함의 은혜에 감사를 잊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썼습니다. 주님을 향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성경책 표지에 시편 116편 12절 구절을 적어놓고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17세기 근대 선교의 붐을 일으켰던 진젠도르프는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 걸려있던 도메니코 페티가 그린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을 지닌 <에케 호모>라는 그림 밑에 적힌 글귀를 보고 감화를 받았습니다. “나는 널 위해 몸 버려 피 흘려주건만 너는 날 위해 그 무엇 주느냐”는 메시지에 큰 도전을 받은 그는 백작의 지위도 버리고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모라비아 지방으로 가서 보헤미아로부터 이주해 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 가정이 한 선교사를 지원하여 3000여 명의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였을 뿐만 아니라, 존 웨슬리에게 큰 영향을 끼쳐서 감리교회가 설립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처럼 받은 은혜를 표현하고 보답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향유를 부어 헌신하는 분명한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 뜨거운 사랑이 향유를 붓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48절) 선언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50절)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주님께 아름답게 헌신했던 귀한 여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분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왜 그녀의 스토리를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녀의 모습을 본받고, 우리 삶의 귀감으로 삼으라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며,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받은 은혜가 많으니 우리들도 여인처럼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많이 사랑한다면 이 여인처럼 그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우리가 가진 귀한 것, 그 옥합을 깨뜨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마다 표현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표현하지 않고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계절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더 깊어가고, 곱게 물든 단풍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감사로 물들어가며, 받은 은혜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 우리들의 삶에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김일영 목사(동행교회)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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