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아름다운 사람 (삼상 25:23~31)
[이 주일의 설교] 아름다운 사람 (삼상 25:23~31)
  • 김병국
  • 승인 2019.09.24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귀석 목사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 하나님의 나라 세워갑시다

주여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삼상 25:28)

정귀석 목사(주평강교회)
정귀석 목사(주평강교회)

‘광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넉넉해야 남을 생각하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곳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판단도 제대로 하고, 결정도 제대로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소중하게 가꾸고 다듬어야 합니다. 마음에 왜곡된 감정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쌓입니다. 분노는 너무나 무섭고 위험한 감정입니다. 어느 순간 터지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아픔을 주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분노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너무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분노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며,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4장을 보면 사울을 죽일 수 있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려주었던 아름다운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 다윗이 25장에서는 분노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25장은 다윗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바로 사무엘의 죽음 이야기입니다.(1절)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 꿈과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했던 사무엘이 죽습니다. 또한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했던 딸을 빼앗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냅니다.(44절) 이때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스승을 잃었습니다.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도망자 신세입니다. 이런 가운데 나발 사건이 터집니다.

3절에 따르면,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600명은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들을 보호하고 도와줍니다. 당시 광야에는 강도떼들이 출몰하기도 했고, 주변 이민족들의 강탈도 종종 있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목동들이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목축할 수 있도록 보호막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양식문제를 해결한 것 같습니다.

이후 양털 깎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양털 깎는 것은 마치 농경사회에서 추수하는 것과 같은 축제의 시기입니다. 이 좋은 날에는 나그네와 약한 자들에게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깁니다. 나발은 양 3000마리, 염소 1000마리를 가진 그 지역의 거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소년 10명을 보내 “샬롬”으로 인사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청합니다. 상식적으로 이때는 자신을 보호하며 도와주었던 자들에게 주인으로서 보상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나발을 보십시오.(10~11절) 나발은 다윗을 돕기는커녕 그를 모른다 하고 주인을 배반한 자라고 모욕합니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떡과 고기를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400명에게 칼을 차게 하고 나발을 죽이러 갑니다.(13절) 엄청나게 화가 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반드시 나발을 죽이겠노라고 합니다.

지금 다윗의 모습에서 24장의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사울에 대하여 24장의 다윗은 분노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온유한 모습으로 인내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려줍니다. 옷자락을 벤 것만으로도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지금은 혈기를 부리며 모두 죽이겠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다윗은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다윗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미치광이처럼 살기가 가득해 보입니다. 24장에서 큰 시험은 잘 이겼는데, 25장에서 작은 시험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위대한 다윗도 분노의 감정에 휘말리면 형편없는 모습이 됩니다. 스승을 잃고, 아내도 떠나고, 백성들도 점점 멀어지고, 여전히 도망자 신세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이때 다윗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나발 사건이 일어났으니 다윗의 분노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사소한 일에 분노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폭발합니다. 세계평화와 인류를 위한 정당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이 무시 받았다고 생각하면 분노합니다. 요즘 매스컴에는 무시당했다는 분노의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무서운 범죄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분노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분노는 그렇게 무섭고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분노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분노하십니까? 나름 기대했는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서 분노하십니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분노하십니까? 보통은 큰 문제라도 집 바깥에서는 긴장하여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이 생기더라도 잘 이겨냅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작은 문제에도 화를 내고 격하게 분노합니다. 긴장하지 않고 기대하다 보니 그 기대가 무너지면 크게 분노하게 됩니다. 잘하는 것 같다가도 별일 아닌 것에 분노하고, 바깥에서는 잘하다가도 집에서는 분노하고, 열심히 봉사하다가도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합니다. 그래서 조금 지내다보면 우리의 이중성 또는 다중성이 드러납니다.

분노하는 이유를 보면 일리는 있습니다.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다가 내 주변에 어리석은 나발, 감히 나를 무시한 나발, 지켜주고 돌봐줘도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나발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폭발할 일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크게 보였던 다윗도 분노하니 형편없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분노에 사로잡히면 앞뒤 분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 아비가일이 등장합니다. 긴박한 상황을 하인으로부터 보고 받습니다.(14~17절) 이때 ‘이 인간이 또!’하면서 당장 나발에게 달려가지 않습니다. 다 네 탓이라고 책임 묻지 않습니다. 곧바로 수습합니다.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로 갑니다.(18~19절) 다윗을 만나자 너무나 겸손하게 땅에 코를 대고 엎드립니다. ‘여종’, ‘내 주’라는 말을 무려 31번이나 사용합니다. 남편의 죄를 자신의 죄로 인정합니다.(24절)

이어서 말하기를 “어리석고 악한 자의 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무시하셔야 합니다. 맘에 두지 마십시오. 나발은 항상 그런 사람입니다”라며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잖습니까?” 이런 아비가일의 설득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다윗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였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아비가일의 말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정체성과 소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왕이십니다. 나발에게 복수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비가일은 자기 입장을 고집하지 않고 다윗의 관점에서 말합니다. 그러자 분노했던 다윗이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곧 공격성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마음 곳간이 풍성해집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습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다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순간의 감정에서, 육신의 본성에서, 사울과 같은 모습에서 깨어납니다.(32~33절)

다윗이 하나님의 권위를 잊고 정체성과 소명을 잊어버렸을 때 나발을 향해 분노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은혜를 기억하자 사울을 대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우리 안에 이런 두 가지 모습이 다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로, 먹는 문제로, 자리다툼으로 자제와 온유의 모습이 사라집니다. 자존심 상한다고, 모욕당했다고, 수치 당했다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계속 유지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을 만나야 합니다. 세상일 속에서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피해의식과 방어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줄 그를 만나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말해주는 아비가일을 만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아비가일은 다윗을 깨닫게 하며 돌이키게 하는 성령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비가일을 만나면 내가 왜 분노하는 것인지 원인을 알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분노의 자리에서 찬송하는 자리로 가게 됩니다.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도와주고 섬겨주었건만 모욕과 원망하는 사람들 때문에 견딜 수 없으십니까? 그걸 쌓아두면 응어리가 되어 결국 터지게 됩니다. 응어리가 되기 전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살다보면 정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감정을 쏟아내기 전에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엄청난 일을 이루어 가다가도 상처, 분노, 미움 같은 감정들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망하는 인생이 됩니다.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는 것은 상대가 나를 화나게 하는 이유도 있지만, 내 마음의 곳간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 되었을 때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누렸던 은혜들과 십자가의 삶을 살겠노라고 결단했던 날들을 기억하십시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모두가 다 주의 은혜 아니었던가요? 호흡을 가다듬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성령님의 음성 앞에 서십시오. 은혜 앞에 서면 회복됩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 그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총회든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되십시오. 그리고 아비가일을 만난 다윗이 되십시오. 아름다운 여러분을 통해 주변이 살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과 나라를 세워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기독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4266
  • 등록일 : 2016.12.12
  • 발행인 : 김종준
  • 편집인(사장) : 이순우
  • 편집국장 : 강석근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 우리나
  •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330
  • 전화번호 : 02-559-5900 , 팩스:[편집국]02-557-9653, [광고부] (02)556-5875, 메일:[편집국] news@kidok.com, [광고부] ad@kidok.com
  • 기독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기독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kidok.com
ND소프트
SNS에서도 기독신문
인기뉴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