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하늘에서 들린 소리 (요 12:26~33)
[이 주일의 설교] 하늘에서 들린 소리 (요 12:26~33)
  • 옥성석 목사(충정교회)
  • 승인 2019.01.16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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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석 목사(충정교회)

눈과 귀 깨끗하게 씻어 하늘의 음성 똑똑히 들읍시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요 12:26~33)

▲ 옥성석 목사(충정교회)

미국 워싱턴시에서 가장 붐비는 어느 지하철역 근처. 허름한 옷차림의 한 청년이 쓰레기통 옆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이 바쁜 도시 사람들은 그 청년에게 관심이 없는 듯 무심히 지나칩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어제 지하철 쓰레기통 옆에서 연주한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조슈아 벨은 30억원짜리 바이올린으로 40분간 최고 수준의 연주를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고작 35달러였다고 합니다. 현장을 오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값비싼 연주를 지나쳐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능이 있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훌륭한 연주를 단지 소음 정도로 여기면서 말입니다.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내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인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머리는 저장용량과 처리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여지없이 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칵테일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를 접해도 쉽게 자신의 생각을 고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진보나 보수나 같은 정보를 접하지만, 양쪽 모두 자신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합니다. 내 성향과 다른 정보에는 아예 귀를 닫아 버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것은 거짓이며, 가짜라고 치부해버리면서 말입니다. 이런 태도를 두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음에도 서로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선택적 지각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빌라도입니다. 그는 예수를 눈앞에 둔 재판석에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정보, 곧 소리를 들었습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마 27:19)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 27:23)

이 두 소리를 들은 빌라도는 어떠한 선택적 지각을 했을까요?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마 27:26)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빌라도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눅 23:23)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라는 말은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는 왜 군중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러한 선택을 내렸을까요? 누가복음 23장 12절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 23:12)

빌라도와 헤롯은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 12절은 그들의 관계가 마치 원수와도 같았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시대적인 정황을 봅시다.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었으며, 헤롯은 로마가 이스라엘의 자치권을 인정하여 선출된 유대왕이었습니다. 이 둘은 아마 정치적으로 정적 관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죽이는 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있어서는 헤롯과 빌라도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둘 모두 여론의 소리, 곧 군중의 목소리 앞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노련한 정치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빌라도와 헤롯은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인지체계에 있어서는 동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날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죠.

한편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 날, 하늘에서는 또 다른 소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28절) 이 소리는 앞서 군중의 소리와는 전혀 다른 십자가 형틀을 눈앞에 둔 예수, 그의 기도에 응답하는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때 이 소리를 예수님과 함께 들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소리 앞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였던가요?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 12:29)

그날 하늘에서 들렸던 소리는 당시 무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였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어떤 이는 마른하늘에 천둥이 쳤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천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방언을 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예수님과 무리들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소리를 들었고, 그 곁에 있던 무리들은 단순한 천둥소리 또는 천사의 소리로 들었을까요? 그것은 결국 관심과 집중의 차이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선택적 지각, 확증편향의 차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무리들은 도대체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들이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그들은 세상 영광에 온통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

둘째, 그들은 세상 권세, 자리만을 탐내고 있었습니다. (마 20: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셋째, 그들은 누가 크고 높은가로 다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

넷째, 그들은 예수를 팔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다섯째,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 27:1~2)

그래서 이런 그들에게는 하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의미 없는 소리 정도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 음성을 들었던 예수님은 무엇에 관심을 두며 어디에 집중하고 계셨던가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7)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뜻, 때, 그리고 영광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한마디로 위에 것을 찾고 계셨습니다.(골 3:1) 그렇기에 예수님은 하늘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가 어떤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2019년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람, 환경을 통해서, 심지어 내 몸 안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언어는 없는 듯합니다. 말씀도 없는 듯합니다. 들리는 소리도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지금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은 세상 끝까지 이르고 있습니다.(시 19:1~4)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분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지고 있습니다.(롬 1:20) 그러므로 세상에 뜻 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고전 14:10)

오늘 나는 과연 하늘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아니, 지금 나의 관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빌라도처럼 노련한 정치꾼의 셈법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리들처럼 온통 세상 영광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까? 혹은 가룟 유다처럼 ‘은전’을 손에 꽉 쥐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이런 그들은 모두 영적 귀머거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정치 셈법에 능통하고 세상 이치, 재리에 재빠르게 반응했을지라도 하늘나라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먼저 우리의 눈과 귀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눈과 귀를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한 해 동안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극히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도 하늘의 음성을 똑똑히 듣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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