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설교 일반 이 주일의 설교
[이 주일의 설교]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롬 10:1~8)문홍선 목사(덕소교회)

은혜의 열심은 하나님나라 세웁니다
은혜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님 공의에 모든 것을 맡겨야

그리스도는 모든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 문홍선 목사(덕소교회)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야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열심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열심 뒤에는 항상 그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지식에서 나온 열심이 아니라면, 자기 의가 되는 독소를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열심이 올바르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갖아야 할 열심과 버려야 할 열심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올바른 지식에서 벗어난 열심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2절,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그들은’ 바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은 과도한 종교적인 열심은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예수를 거부하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교회를 멸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낸 열심이지만 그 열심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방해한 것입니다. 이런 열심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신앙 생활했지만 결국 되돌아서 보면 내 열심이요 내 의가 발견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한다는 일이 교회를 무너뜨리게 되었다면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광명의 빛이 비추어서 눈이 멀고 예수 만나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 은혜 받고 자기 열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3장 8~9절,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발견 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세부 조항을 만들어서 지키지만 그것이 하나님 사랑이 되지 못하고 자기 의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세부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걸어가는 것은 괜찮으나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여 과도한 노동을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열심의 그늘이 율법의 정신을 도외시하고 율법을 지켰다는 자기 의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율법은 하나님 사랑으로 가지 못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데로 갔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잃으면 자기 자랑이 되고 맙니다. 봉사가 자랑이 되고 직분이 자랑이 되고 맙니다. 자기 의로 하는 신앙생활은 자유함도 기쁨도 없습니다. 오직 은혜만이 우리에게 기쁨과 자유함을 줍니다.

둘째, 올바른 지식으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내가 어떤 존재인 것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나는 완전히 타락한 소망 없는 죄인입니다. 동네에서 돈 좀 있어 행세를 하는 사람과 세계 최고의 부자는 비교도 안 됩니다. 사람과 사람도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이 죄악뿐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고 죄가 없으신 온전하신 것만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드림은 모든 것이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제대로 비추이면 내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이 쓸모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열심이 잘못되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국교회는 열심이 없어서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열심이 발전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이끄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를 믿어 은혜로 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직분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것은 율법을 지킬 분은 오직 예수뿐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을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을 얻고, 다시 행위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들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신앙생활이 다시 내 행위로 돌아간다면 복음을 역행하는 일입니다. 목사가 한평생 목회를 잘하고 자신이 이룬 교회나 목회가 본인의 업적이라고 여긴다면 그것 또한 복음의 역행입니다. 업적이라고 여기는 순간 욕심이 생기고 욕심에서 나오는 열심은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셋째,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십시오.

6~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30장 12~14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말씀을 자세히 보면 간단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가까이 와 있어서 그것을 얻으려고 하늘로 올라갈 필요도 없고 바다를 건너가 찾을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되는 것은 예수를 모시러 하늘에 올라가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가 있는 무저갱에 내려가 예수님을 모셔 와야 예수가 부활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늘에 올라가거나 산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부활을 위해서 죽기까지 노력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정의는 은혜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도 은혜입니다. 교회는 은혜 없는 열심을 내면 낼수록 무너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흥합니다. 교회는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쇠퇴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을수록 교회는 흥왕합니다. 관권은 우리의 행위가 없음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 아래 거하지 않음이 문제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행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없는 것이요 복음으로 은혜 받은 성도가 적다는 데 있습니다.

성도는 내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이 내 열심 이 전부라면 계획적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제일 믿음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값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어서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사람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무능함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도 판단하지 말자는 관용론자도 아닙니다. 은혜로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으니 그 은혜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교단적으로 국가적으로 많은 문제들 앞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기 전에 먼저 은혜 앞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값없이 구원받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돌아갑시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합시다. 은혜 없는 열심은 하나님 나라에 방해가 되지만 은혜 안에서 나오는 열심은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우리의 열심은 어떤 것입니까? 내 자랑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에서부터 시작된 열심을 더욱 내시기를 바랍니다.

 

김병국 기자  bkkim@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병국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