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석 목사(충정교회)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임하는 은혜를 사모합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1)

▲ 옥성석 목사(충정교회)

언젠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내 책상 위에는 언제든지 누를 핵단추가 놓여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Nuciear Football·뉴클리어 풋볼)을 갖고 있다”며 응수했습니다. 이에 뒤질 새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핵폭탄이 날아오는 순간 2k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숙한 지하 핵 벙커 속으로 사라진다. 이 벙커 속에는 무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식수공급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이런 공방들이 이어지자 지구 최후 종말시계(Doomsday Clock)의 초침이 출렁거렸고 자연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도 이런 장치나 장소가 있을까 하는 의문의 관심들이 고조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급격히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새해를 열고 있습니다. 핵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피할 곳을 준비해 두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지구의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 6: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그렇다면 종말의 버튼을 가진 주님은 언제 그 단추를 누르실까요? 첫째,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때(마 24:12)입니다. 둘째,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날 때(마 24:24)입니다. 셋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마 24:14)입니다.

하지만 영적 눈과 판별력이 둔한 우리는 이런 징조를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우주적 종말이 우리 생애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종말은 모든 이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다윗은 시편 57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표제에서 소개하는 대로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 있습니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님에도 그의 생명을 해하려는 자들이 굴 어귀에 들이닥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편 57편 1절은 바로 그때 다윗이 하나님께 올렸던 기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원수들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었던 그 굴속에서 그가 살아났으며, 결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명문가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2019년 새해를 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다윗은 그 때에 굴속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첫째, 부르짖었고, 소리 내었습니다. 그는 지금 숨을 죽이고 몸을 숨겨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부르짖고 있습니다. 소리 내고 있습니다.(시 142편) 이것은 인간의 경험과 이성, 환경을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간절함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 그는 ‘은혜’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은혜로 번역된 ‘하난’이란 단어는 ‘긍휼’, ‘자비’, ‘불쌍히 여김’, ‘인애’, ‘은혜’라는 다섯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은혜 속에는 회개와 겸손이 담겨있습니다. ‘은혜를 주시옵소서. 긍휼히,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인애를 기억하옵소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을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행 13:22)

더 나아가 굴속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다윗은 어딘가로 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곳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고 밝힙니다. 다윗이 말하는 주의 날개 그늘아래는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놓여있었는데, 그 법궤 안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비가 안치되어 있었고 법궤를 덮은 뚜껑이 있었습니다.(출 25:18~20, 왕상 6:16, 23~25, 레 16:11~17) 그리고 그 뚜껑에는 날개가 달려있었습니다. 다윗이 지금 말하는 ‘주의 날개’는 법궤 뚜껑 위에 펼쳐진 날개를 시사합니다. 평소에 성전을 사모했던 다윗은 지금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의 날개(그룹)를 사모하여 피가 뿌려지는 곳, 그 십자가 밑으로 피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의 날개 그늘’은 단지 성전의 법궤, 속죄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의 날개 그늘’은 과연 어디일까요?

다윗이 그때 굴속에 혼자 있었던가요?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은 형제들,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던 자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벌레요, 사람이 아니요, 백성들의 조롱거리였습니다.(시 22:6) 그런데 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윗 곁으로 몰려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다윗은 이들을 도와주고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개 그늘’은 바로 이런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과 함께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들이 그 굴속에서 다윗과 함께 다윗을 위하여 기도하며 부르짖었습니다.(행 9:39) 그때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바로 이들을 ‘주의 날개 그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당시 다윗 곁에는 또 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시 57: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여기 ‘~가운데서 살며’ ‘~자들 중에 누웠으니’라는 표현은 다윗이 지금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다윗은 창과 화살, 날카로운 칼과 같은 이들을 가리켜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지칭합니다. 사실 이들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그 누군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영적 원수입니다. 다윗은 지금 눈에 보이는 사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신뢰하는 자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흑암의 세력이 역사하는 현장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지금 원수들은 이빨을 드러내놓고, 혀를 날름대며 지금까지 다윗이 걸어온 걸음을 다 까발리고 있습니다. 누가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다윗을 건져낼 수 있단 말인가요? 그때 다윗은 속죄소 위, 피가 뿌려져 있는 곳, 스랍의 그늘이 있는 그 곳, 골고다 십자가 밑으로 피합니다. 그 곳이야말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 한해를 열어갈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곳,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임합니다. 그 주의 날개 그늘이 어디인가요?

먼저는 성전입니다. 또 하나, 이웃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고난과 아픔, 환란 중에 있는 자들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그날, 주님은 두 가지를 확인하실 것입니다. 주의 전을 얼마나 사모했던가요? 내 곁의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얼마나 가까이 했던가요? 그날 심판대 앞에서 사탄은 검사가 되어 우리의 죄악들을 조목조목 나열할 것입니다. 평소엔 거짓말쟁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하는 사탄이 나에 대해 참소하는 것은 모두 진실입니다. 바로 그때 오직 한 분의 변호사가 자신의 피 흘린 상처를 내보이시며, 이렇게 나를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성전을 사모했으며 이웃과 함께 했다.”(롬 8:34)

2019년! 진정 은혜를 입기 원하십니까? 비록 내 환경과 삶이 힘들지라도 주의 전을 사모합시다. 그리고 불우한 이웃과 함께 합시다. 이런 자에게 ‘은혜 위에 은혜’이신 그 분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1년 내내 함께 할 줄 확신합니다.(요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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