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말씀의 검을 들라(출 32:29)
[이 주일의 설교] 말씀의 검을 들라(출 32:29)
  • 김병국 기자
  • 승인 2019.04.0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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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석 목사(해운대신일교회)

죄에 대해 말씀의 칼을 들어 성령충만의 삶 회복합시다

조현석 목사(해운대신일교회)
조현석 목사(해운대신일교회)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출 32:29)


어느 군부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저녁식사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이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돈가스를 1인당 2개씩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줄을 서 있던 병사들이 그 소식을 듣고 식당이 떠들썩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스가 없다고 합니다. 부식을 담당하는 병사가 보급을 받을 때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를 가져온다는 것이 실수로 돈가스 두 상자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소스도 없이 돈가스를 느끼하게 2개나 먹으라는 말이야?”라며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고참병이 말하기를 “야! 우리는 불평할 필요가 없어. 분명히 지금 어느 부대 애들은 소스만 2개를 먹고 있을 거야”라며 불평을 잠재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불평 대신 감사를 선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편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의 형편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금송아지 사건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 편에 서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간구함으로 용서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린 결정들을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보자로서 모세는 그의 백성들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용서를 받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받은 후 그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돌 판을 깨뜨리고 황금송아지를 갈아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마시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악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19절)

모세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오라”고 요청했을 때 레위 자손들이 모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각기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자기의 형제, 친구, 이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렇게 레위자손으로 인해 죽은 자가 3000명 가량이었습니다.

황금송아지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서 죄악에 대해 어떻게 진노하시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 32:33)

이 사건은 우리가 결코 중간지대에 서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이 아니면 세상의 편, 곧 마귀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께 양다리를 걸치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며, 마귀의 종도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 아내가 자신의 남편도 사랑하고 다른 남자도 좋아하며, 한 남편이 자신의 아내와 다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면 그것은 진정한 부부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미지근한 삶에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레위인들이 모세의 말에 순종해서 칼을 들어 죄인들을 죽였을 때, 3000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자신의 가족들까지 죽이고 하나님 편에 섰던 레위인들에 대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는 말로 그들의 행위를 인정합니다. 레위인들은 그 헌신을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구별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우상숭배자들과 하나님을 배역한 자들, 그리고 하나님께 마땅히 심판받을 자들을 향해 과감하게 칼을 들었습니다. 심판의 대상자들 가운데는 자신의 자식들도 있었고 자신의 형제들도 있었지만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하여 칼을 휘둘렀습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자들과 온전히 구별되어 하나님을 향해 분리되었을 때 모세는 레위족속에게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라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레위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3000명은 과연 구원받은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모두 애굽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 출애굽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죽음의 심판이 넘어간 백성들이었고, 그들 앞에 놓여있는 홍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지는 것을 친히 목격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로 이 사건이 오늘 우리를 위한 본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자식과 형제들까지 칼을 들어 베어버림으로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구별되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들의 삶에 그 상황과 다름없는 영적 전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있는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세상의 악한 영적 통치자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대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는 사자같이 우리 주위에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지면 우리는 망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고 사탄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토록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우리가 쉽게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감동을 받으면 변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아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흐르는 감동을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내 삶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의 죄악은 꿈쩍하지 않는 큰 바위처럼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사람들처럼 우리 안에 있는 죄악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숭배들, 간음과 배교에 대한 영적 세력들을 향해 칼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안에 하나님을 떠나있는 죄악들에 대해 심판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크리스천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댄 델젤(Dan Delzell) 목사는 “기독교인의 영적 삶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1순위는 아마 포르노를 보는 것일 것”이라면서 “이 짐승과 같은 죄악은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마수를 뻗치고 있으며 클릭 한 번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포르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영적인 힘이나 영적인 동기가 없어진다”면서 “급하고 산만하고 쉽게 분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악한 습관에 대해 성령의 검인 하나님 말씀의 칼을 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인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죄악은 어떤 사람에게는 포르노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돈에 대한 욕망이나 세상에서의 인정일 수 있고, 세상적인 성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이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이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도록 우리 인생의 참된 ‘주’가 되셨습니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는 메르스 사태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186명의 확진자 가운데 사망자만 38명이나 나왔고, 경제적인 손실은 무려 10조원대로 추산되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메르스 바이러스를 가진 환자가 어떤 차단조치도 없이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또 다른 환자를 양산했습니다. 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격리시키지 못하고 퍼져나가게 방치한다면 결국 그 죄가 우리 삶을 통째로 삼키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어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한 주님의 대속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맞이하는 주간이 다가옵니다. 우리 속에 살아있는 죄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레위인들처럼 죄에 대해 말씀의 칼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과 임마누엘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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