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섭 목사(창신교회)

하나님의 은혜로만 강하고 담대한 새 출발 가능합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창 29:10)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인생의 최대 위기에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시고 그와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창 28:13~15).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사건으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생기와 활력이 넘쳐서 자주 껑충껑충 뜁니다. 반면 어른들은 좀처럼 그렇게 뛰지 않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한걸음 떼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먼 여정이었습니다. 걸어서 먼 거리를 괴나리봇짐 메고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발걸음은 놀랍게도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받아주시고 그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야곱의 새로운 인생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첫째로, 벧엘에서 하란까지 야곱의 발걸음은 신나고 활기찼습니다(1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이동한 거리는 약 900km(서울과 부산의 왕복거리)이었습니다. 하루에 20~25km 속도로 쉬지 않고 가면 36~45일 정도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3일째 쯤 저녁이 되었을 때 잠을 자던 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벧엘까지 약 3일간 오는데 야곱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벧엘에 찾아오신 결과 이때부터 그의 발걸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벧엘에서 하란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걸음은 신나고 활기찼습니다(1절). 야곱의 발걸음은 어린아이의 껑충껑충 뛰는 생기와 활기, 의욕과 기쁨과 소망이 넘쳤습니다. 1절의 ‘길을 떠나’는 히브리어의 ‘자기 발을 높이 들다’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눈을 높이 드는 것과 같이 야곱이 자신의 발을 높이 들었음을 의미합니다(창 18:2, 22:13).

이것은 또한 심지어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창 29:11). 이것은 야곱의 발걸음이 활기와 소망이 넘쳤음을 보여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지친 사람들의 발은 무겁고 뒤로 처지고 어그러집니다(히 12:13). 눈을 높이 드는 것과 목청을 높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높이 드는 것은 체중과 짐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놀라운 약속하심으로 가벼워졌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한데로 그를 지키고 보호하며 동행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이 기대와 소망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약속을 하시고 그와 동행하심으로 야곱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활기가 넘쳤던 것입니다. 야곱은 마치 900여㎞가 되는 머나먼 거리를 가까운 거리를 간 것처럼 사뿐하게 간 것입니다. 얼마나 이것은 야곱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망이 넘쳤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 찾아와 놀라운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전개하실 일을 기대하고 생각하며 기쁘고 즐거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라헬의 극적인 만남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도착하여 기다려야 하는 장소 우물, 우물에서 만나야 할 목자들, 외삼촌의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목자를 다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하여 우물에서 이삭의 미래 배우자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창 24:12~25).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날 수 있도록 우물로 인도하셨습니다. 본문 2절은 ‘본즉’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아 보니 우물이 있도다’란 뜻입니다. 두 번째 ‘보다’라는 표현을 개역성경에는 생략했습니다. 이 ‘보다’라는 단어 둘을 합치면 ‘아 보니 우물이 있도다. 그런데 우물에 양떼들이 누워있네’가 됩니다. 그리고 6절의 세 번째 ‘보다’(‘평안하니라’와 ‘그의 딸 라헬이’ 사이에)도 개역성경에 생략되었습니다. 야곱이 그들에게 평안을 묻고 그들이 답할 바로 그때에 라반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왔습니다(6절). 벧엘에서 위대한 세 장면(사닥다리의 모습, 그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의 모습, 야곱에게 내려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연출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서 이러한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만 하신 분이 아니라, 그의 약속을 친히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위해서 3적(敵)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3적이라는 말은 적시(適時), 적소(適所), 적인(適人) 이란 말입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중요한 만남의 장소 우물에서 제일 먼저 목자들을 만났습니다(2절). 그는 거기서 양떼를 키우는 세 무리의 목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우물에서 큰 돌을 굴려내고, 양떼들에게 물을 주고, 다시 흩고, 또 다시 모으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여러분 어디에서 왔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하란에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은 이어서 혹시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5절). 당시 라반의 나이는 아버지 나이 또래입니다. 야곱과 부친 이삭 사이에 나이 차이가 60살이므로 이때 야곱이 77살이며 라반의 나이는 137살이 됩니다. 하란의 목자들은 굉장히 나이 많은 외삼촌 라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우물에서 외삼촌 라반을 잘 아는 하란의 목자들을 만나도록 절묘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4~5절).

그들은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6절). 바로 그때 라헬이 아버지의 양떼를 거느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9절).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서 꼭 가야할 장소와 만날 사람과 정확한 시간까지도 모두 주장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셋째로, 야곱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대장부의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9~10절). 목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양떼가 모이면 여럿이 우물 아귀에서 큰 돌을 옮기고 양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3절). 목자들은 양떼들이 다 모지 아니했을 때에는 양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8절).

야곱은 이러한 광경을 목격하고 해가 중천에 있어 뜨거우니 양들이 모일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양들에게 물을 주고 양들을 흩어 풀을 뜯어 먹게 하라고 하였습니다(7절). 목자들은 야곱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8절). 우물 아귀를 덮은 돌이 커서 이것을 옮기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한두 목자가 이 큰 돌을 옮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어야 큰 돌을 굴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의 딸 라헬과 그 양떼가 오는 것을 보고 우물 아귀에서 큰 돌을 혼자 옮긴 것입니다(10절). 야곱은 지금까지 어떤 목자도 하지 못했던 일을 양떼를 이끌고 오는 라헬을 의식하고 행한 것입니다. 약 100년 전에는 야곱의 모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과 그의 낙타들에게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창 24:17~20). 그런데 지금은 리브가의 아들이 외삼촌의 양떼에게 물을 주기 위하여 이와 같이 행동한 것입니다(10절).

야곱은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그를 찾아와 만나시기 전에 전혀 이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벧엘 사건 이전의 야곱은 존재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과거의 야곱은 부친 이삭을 포함하여 누구도 인정하지도 않는 무의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를 알아준 사람은 모친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인생 중반 77세가 되도록 존재감이 없는 실패자였습니다. 야곱은 원래 힘센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집에서 요리만 하고, 조용하게 지냈던 사람입니다(창 25:27).

그는 무능하고 무기력하여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이제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혀 다른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야곱은 모든 사람들의 호감과 주목을 한 몸에 받는 힘센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옛날의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동행하심으로 야곱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약한 야곱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무기력했던 그를 의욕과 힘이 넘치는 사람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어두움이었던 그가 이제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를 사로잡았던 이전의 절망과 좌절은 벧엘의 놀라운 체험 이후에 용기와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해냈습니다. 목자들은 한두 사람이 그 큰 돌을 굴려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믿고 큰 돌을 우물에서 굴려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에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밧단아람으로 보내는 데에는 목적과 계획이 있어. 하나님께서는 나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어. 그가 나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 야곱은 이 모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낮선 목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야곱은 양떼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큰 돌을 옮기는 놀라운 행동을 한 것입니다. 목자들은 야곱을 보고 크게 놀라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언제 이렇게 힘이 넘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가 언제 이렇게 활기와 소망이 넘쳤습니까.

그 앞에 인생의 해가 지는 것과 같은 어두컴컴함과 좌절만 있었는데 그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운 약속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으니 그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라헬이 집으로 뛰어가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조카 야곱이 왔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약 140살이 되는 라반이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 영접했습니다(13절).

그는 1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의 종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물로 달려갔습니다(창 24:29). 그런데 지금 고령인 그가 달려와서 야곱을 껴안고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입니다(창 29:13). 과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데로 야곱에게 힘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100여 년 전에 자신의 눈앞에서 전개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창 24:27).

반면 야곱은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도, 한 마디 기도도 없었습니다.
2018년 새해를 힘차고 소망이 넘치게 출발하기 위해 개인과 교회와 민족에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약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새 벧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요 1:51).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