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우리의 기도를 이루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려고(왕상 17:1~7)
[이 주일의 설교] 우리의 기도를 이루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려고(왕상 17:1~7)
  • 기독신문
  • 승인 2019.07.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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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기름부음에 걸맞은 삶은 오랜 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왕상 17:3~4)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요즘은 성도들이 모이면 이렇게 말한답니다. “갈만한 교회도 없고, 믿을만한 목사도 없다.” 반면 목사들은 모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 같은 믿음과 섬김과 헌신의 성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의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의도적으로 잘못 살려고 애쓰는 목회자나 성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한다고 그 노릇을 그만 둘 수도 없는 것처럼, 성도들이 만족을 못한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부족함을 느낀다고 하여 성도로서 예수를 안 믿거나 교회를 안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런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의 극소수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 놓고,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고 남을 향해서도 잔인할 만큼 공격적으로 정죄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정말 훌륭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면에서는 문제가 많은 이중인격자더라”가 아니라, “원래 우리는 죄성으로 똘똘 뭉친 죄인들인데, 그래도 그 사람은 이런 면에서는 훌륭하게 살더라.”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게는 수준 이하로 보이는 그 사람이 내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역에서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그래서 요즘 제 SNS 배경화면에 이런 문장을 넣어 두었습니다. ‘無求備於一人’(무구비어일인: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인 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자마자 엘리야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대단합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1절) 도대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들었기에 왕 앞에서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야고보는 이때 엘리야가 단순히 예언만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약 5:17) 야고보는 엘리야가 이 말을 하기 위해, 혹은 선포한 이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선지자는 그저 하나님이 시키는 말만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자기 입을 통해 선포하도록 하나님이 전해주신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 큰 사역,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기도의 배경 없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모르는 시간에, 간절하고 오랜 기도가 없이는 이런 선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하는 일이 이루어지려면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이 선포한 말씀 때문에 오히려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이라고 당당히 선포하던 선지자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숨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겁해 보입니까? 그렇게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으면 끝까지 대적자들에게 폼 나게 맞서야 할 텐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떠나, 숨으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숨어 있는 동안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새로 여기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확신과 말씀의 사람을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부정한 새를 통해 연명해야 하는 비참한 형편으로 몰아가십니다.

어쩌면 엘리아는 이렇게 탄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떠나고, 왜 숨어야 합니까?” 우리도 궁금합니다. 3년6개월이 지나 18장에서 이루실 갈멜산의 기적을 ‘지금’ 행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까? 우리 삶에서도 때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무기력한 현실 때문에 갈등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숨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나님의 능력의 유무와 관련지어서는 본문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비겁한 명령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사람, 곧 엘리야와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숨어 지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엘리야였습니다.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이 자랍니다

엘리야는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숨으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씀에도 순종합니다. 왕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는 일이나, 비겁하게 숨는 일이나 엘리야에게는 그저 순종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까마귀가 먹을 것을 날라 옵니다. ‘단절’이라는 의미의 ‘그릿’ 이름을 가진 시냇가에서 하나님은 엘리야로 하여금 세상과 단절시키시고 오직 하나님의 손길로만 먹이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과 더불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율법적으로 부정하다 여겨지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심으로, 일상적인 우리 인간의 상식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삶을 훈련하십니다. 먹을 것을 안정감 있게 쌓아둔 것이 아니라 마치 광야에서 매일매일 거두어들여야 했던 만나처럼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물어다주는 떡과 고기를 기다리게 하심으로서, 매 순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엘리야를 훈련시켜 가셨습니다.

때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가 그릿 시냇가처럼 부끄럽고, 한심해 보이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손길이 준비된 자리, 은혜의 자리,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자리, 내 믿음이 자라날 자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기름부음은 잠깐이지만, 거기에 걸맞은 삶을 위한 훈련은 길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붙들고 순종하는 그 걸음과 그 자리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릿 시냇가에도 물이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릿 시냇가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자리였고, 어금니를 깨물고 믿음으로 순종한 자리였습니다. 궁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바닥을 친 줄 알았던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은 상황이 다가올 때 어느 누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순간에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물이 마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하지요. 비가 오지 않아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비가 오지 않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되도록 선포하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문제가 겹치고, 부담에 부담이 겹치는 상황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이전에 했던 기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주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왜 하필 우리에게? 왜 굳이 지금?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이라고 투덜거리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내가 뭐? 내가 뭐 어쨌기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단지 너의 기도에 응답하고 있을 뿐이야. 왜 이러냐고? 다 너 때문이야. 네가 기도한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야.”

기도한 만큼 훈련받아야 하고, 꿈꾸는 만큼 헌신해야 하고, 헌신하는 만큼 쓰임 받고, 쓰임 받은 만큼 복 받습니다

소소히 누리던 은혜의 시냇물을 왜 마르게 하십니까? 엘리야의 기도와 선포 때문입니다. 왜 어려움이 임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위대한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사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꾼다고 당장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수고가 필요합니다. 기도한다고 모두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훈련과 연단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심한다고 다 위대해지지 않습니다. 결심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좋은 목사가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아닙니다. 훈련받고 연단 받으면서 실패를 경험하고, 다듬고 다듬어 만들어지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좋은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만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교회가 됩니까? 그 기도가 이루어지려면 더 큰 역할을 감당해 낼 지도력을 연단시키시고, 쉽게 살던 삶을 내려놓고, 이전에는 안 해도 될 일 하게 하시고, 남이 하지 않는 부담을 짊어지도록 헌신도 요구하시고, 우리의 그릇을 키우시려고 시험과 실패도 거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지만, 이로부터 3년 후 갈멜산의 영적 승리를 가져올 하나님의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기 원했던 모세로 하여금 꿈꾸었던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빈들에서 40년이나 훈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주신 이후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다윗이 빈 들판을 쫓겨다니게 하며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를 모이게 만드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사울의 사위라는 이유로 곧바로 왕위를 계승했다면 목동 출신이라고 얼마나 놀림 받았겠습니까? 사울의 사람들로 채워진 왕궁 안에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고 받들어 줄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아둘람 굴의 생활을 통해 이해관계 없는 지지자들이 모여들었고, 그 기간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전투 경험이 쌓여가고, 사람 보는 눈, 상황을 읽는 눈, 국제 정세를 읽는 눈이 길러졌습니다.

기름부음은 잠깐이지만, 거기에 걸맞은 삶을 위한 훈련은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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