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드러날 것을 꿈꾸며(왕상 18:20~40)
[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드러날 것을 꿈꾸며(왕상 18:20~40)
  • 기독신문
  • 승인 2019.07.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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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살아계신 참 하나님 섬기는 진짜 교회임을 알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 18:37)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정명호 목사(서울 혜성교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비와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아합 왕 앞에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먹이시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얼마 후 엘리야의 선포로 시작된 가뭄 때문에 엘리야가 피해 있었던 그릿 시냇물도 메말라버립니다. 하나님은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의 집으로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 여인의 집에 기름과 곡식 가루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난 그 여인을 통해 엘리야를 먹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말씀을 품고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경험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그런데 하나님의 채우심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이 여인의 집에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홀로 된 사르밧 여인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유일한 소망과 힘이 되었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이 여인은 얼마나 괴롭고 슬펐겠습니까? 마음이 허물어져 내린 이 여인은 은인이었던 엘리야에게 기구한 인생을 자책하며 하소연합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 17:18) 굶어 죽을 인생을 기껏 살게 만들었더니 이제는 아들 죽은 책임까지 엘리야에게 덤터기 씌우는 듯하는 이 여인의 하소연 앞에서 엘리야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이 문제를 품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었던 아이를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르밧의 여인은 엘리야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왕상 17:24) 간절히 기도하는 엘리야와 그에게 응답하셔서 죽은 아들을 살려내신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여인이 하나님과 엘리야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이 여인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끼를 먹은 후에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엘리야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알겠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여인의 이 고백은 그동안 엘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 앞에, 엘리야를 ‘다시’, ‘새롭게’,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너무 감격스러울 때는 처음 보았다, 처음 들었다, 처음 맛본다 등의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이 여인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을 통해 이미 알았던 하나님을 “내가 이제야 아노라”라고 감격으로 고백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가 언제입니까? 아무 문제없이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있을 때, 모두가 끝났다고, 해결의 길이 없다고 절망할 때, 그럴 때 나에게도 너에게도 답이 없지만, 하나님께는 길이 있다고 믿고 기도할 때, 그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질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입니다. 우리가 잘 믿는다고, 잘 산다고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날 때 오히려 우리가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예상치 못할 때에 맞닥뜨리는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보는 우리의 관점이 이렇게 달라져야 합니다. 만사형통만이 축복이 아니라 당면한 문제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성도들과 교회가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이것인 줄 믿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이러한 은혜와 기적의 경험 안에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아합을 피해 숨으라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아합에게 찾아가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아합 왕 앞에서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외쳤던 엘리야. 사르밧 여인에게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 17:14)고 외쳤던 엘리야가 이제 3년6개월 만에 아합 왕 앞에 나타나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 18:19)

칼이 아닌 기도로 싸우는 갈멜산의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신적인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호화로운 옷을 입고 왕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무리, 3년6개월을 입고 다녀 지저분하고 헤진 옷 하나 걸치고 편들어 주는 사람 한 명도 없이 혼자 서있는 엘리야, 어찌되나 두고 보자며 혐오와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합 왕, 큰 구경거리 생겼다며 모여든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모습을 말입니다.

엘리야는 그 많은 숫자 앞에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21절) 그리고는 돌아서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향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영적 대결을 신청합니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23, 24절) 도대체 무슨 확신과 배짱으로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 “누가 진짜 하나님인가?” “누가 진짜 선지자인가?”를 판가름 지을 목숨을 건 영적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먼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아침부터 낮까지’(26절), ‘뛰놀며’(27절), ‘큰 소리로’(28절),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려가며’(28절), ‘미친 듯이’(29절) 떠들며 오후 늦게까지 기도해도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진실함과 신실함과 정성과 열정이 기도응답과 구원을 이룬다면 이들은 응답받고 구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열정이나 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의 대상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동안 가뭄 선포의 사건으로, 사르밧 과부 집안에 나타난 가루와 기름의 사건으로, 죽었던 그 집 아들이 살아난 사건으로, 오랜 기도의 훈련을 받아 왔던 엘리야가 기도를 올릴 차례입니다. 엘리야는 지금은 무너져버린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던 제단을 먼저 고쳐 쌓습니다. 그런데 나무와 제물에 조금이라도 불이 잘 붙도록 모든 환경을 더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판국에 오히려 제물에 불이 붙기 어렵도록 많은 물을 끼어 얹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붙이는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야만 한다면 제물이 젖어 있으나 말라 있으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만 이루어질 일이라면 1억이든, 100억이든, 1000억이든 액수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문제가 심각하고,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과정은 자꾸만 꼬여 들어간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이겠습니까? 문제의 핵심은 진짜 하나님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참된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6, 37절) 엘리야의 기도제목은 분명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늘의 불을 구하는 기도였고, 하늘의 불을 구하는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38, 39절)

비전을 위해 결단하고 기도하라!

때로 우리 인생에는 진리나 생사의 문제가 아님에도 중요한 결단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이 바로 그럴 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어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소망과 현실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맞는다고 여겨진다면 힘을 다해 우리의 인생을 헌신으로 드립시다. 하나님이 불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루 통과 기름병을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며 현실의 어려움과 악한 세력에게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진짜 교회,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인 것이 드러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살아계신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며 구원얻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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