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이 비우실 때 (삼상 1:1~2)
[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이 비우실 때 (삼상 1:1~2)
  • 기독신문
  • 승인 2019.06.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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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 목사(서울비전교회)

철저히 비워낸 조국 교회에 새로운 역사를 채우십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삼상 1:2)

신현수 목사(서울비전교회)
신현수 목사(서울비전교회)

같은 조국을 가졌으면서 서로 다른 사상과 체제 때문에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가슴 아팠던 역사는 지워지지 않은 생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슬픈 역사의 현실에 이렇게 서 있습니다. 어느 시기인지는 몰라도 저의 가슴 한 구석에 들어온 시(詩)가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외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힌 못처럼 새겨진 “나 위하여 사신 어머니! 꿈에도 못 잊을 그리운 내 모교여! 그리고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으소서!”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6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희생과 헌신으로 다져진 조국의 땅을 우리는 밟고 삽니다. 의미 없는 나의 일상의 발자국은 피 흘린 선배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발자국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국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실 지 너무도 궁금합니다. 내 조국의 앞날이 이렇게 궁금한 것과 유사하게, 약 3000년 전 중동의 조그마한 민족의 앞날도 답답함과 궁금함으로 가득 찬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역사적 종교라고 합니다. G.E. 라이트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인간 생활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습니다. 3000년 전 중동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역사를 펼쳐 나가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과 의도 속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었던 가나안 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주어진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상실하고, 다른 민족의 풍요와 물질적인 부를 존재의 목적으로 삼는 행태에 동화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그들 앞에 주어진 현실에 대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민족의 삶을 지탱해야 할 이유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당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무서운 속도로 하늘의 목적을 망각하고 땅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결국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혼란과 허무와 불안한 앞날이었습니다.

사무엘서는 시대적으로 사사기적 혼란의 시기와 왕국 시대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성경입니다. 사무엘서에는 사울 다윗 사무엘 등 몇몇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더 큰 이야기의 주도권은 혼란과 방황의 시기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의 개인과 가정과 나라의 새로운 길이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불임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성경을 좀 더 넓게 펼쳐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무엘서 앞에 나오는 룻기는 흉년으로 시작합니다. 흉년과 불임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을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신명기적 사건으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약속을 지탱하는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가지 현상들이 발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한나의 불임을 단순하게 개인적인 아픔을 해결받은 이야기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언약적 회복의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교훈을 통하여 현실을 보는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하심과 인도하심으로 국가적 가난과 피폐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많은 성장과 발전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우리는 성경을 너무 개인적인 문제해결과 축복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한나의 불임을 신명기적 재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하나님이 비우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 통치 속에는 축복의 통치도 있지만, 재앙적 통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성경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장 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고치시기 위해 한 여인의 불임이라는 사건으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앞에 찾아 온 비움의 사건들 때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한나의 비워짐은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였던 브닌나로부터 인간적인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2절)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서의 ‘있고’, ‘없음’은 피부로 와 닿는 문제이기에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괴롭힘 때문에 심히 격분했습니다.(6절) 사랑하는 남편 엘가나의 위로도 그녀의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지고 갔습니다.(12절)

하나님에 의해 비워진 문제는 비우신 분 앞에 나아가야 근원적인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인간적인 처방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의 해결을 위해서 인간적인 생각마저 뒤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나의 비워짐은 심정을 쏟아 붓는 기도로만 해결될 수 있는 비움이었습니다. 비움의 장소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른 사람과 같이 하려다가 시기와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자기 비움의 결단은 언제나 혼자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른 비워짐으로 아파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 비워짐이 흉년이나 불임처럼 자연적인 것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처럼 영적인 차원의 해결을 위한 채움의 장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12절) 이 부분이 하나님께서 고장 난 역사를 고치시는 작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비워낸 영혼에 새로운 역사를 채우십니다. 한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도 선(線)을 넘는 기도’를 합니다. 한나의 기도는 응답에서 멈추어 버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입성 후에 더 이상의 갈 길을 가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이스라엘 민족의 길을 넘어선 한 여인의 기도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통해서 얻어진 사무엘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인물로 사용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의 깊이와 넓이는 정치, 역사, 종교, 사회적인 모든 문제의 근원을 짚고, 하나님의 해결책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는 기도였습니다. 아니 혼란한 시대를 향한 한 편의 설교로도 충분한 내용입니다.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이라는 비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세상 어디에 우리처럼 철저하게 비워진 민족이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비움의 아픔을 안고 방방곡곡에서 부르짖던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부흥과 성장이란 축복을 채우셨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채움에 머물러 버린 듯합니다. 채워짐이 힘과 권력이 되고, 자기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성(城)이 되어 버린 느낌마저 드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움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교훈으로 상존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사역자들이 스스로 비움의 자리로 내려가 진정한 교회의 새싹을 피우고 있는 현실은 예루살렘 종교 시대의 절망을 부활의 짙푸름으로 이겨내신 예수님의 채워짐의 희망을 보는 듯 합니다. 외적인 제도와 규모의 허세를 포기하고 복음의 본질적 가치에 도전하는 젊은 사역자들이 그동안 기성교회의 손길이 닿지 못했던 변방에서 짙푸른 새싹들처럼 복음을 살아내고 있는 한 한국교회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는 젊은 신학도들이 고난과 방황으로 얼룩진 삶의 질곡의 현장을 치유하고 살려내는 색다른 꽃들을 피워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100년 전 조국 교회가 이 민족의 희망의 횃불이던 시기를 다시 한 번 맛보는 건강한 부흥의 시기를 꿈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6월이면 희생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아야 할 민족입니다. 나라를 위한 희생도 귀합니다. 신앙적 차원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에 유래 없는 믿음의 선배들의 자발적 비움, 순교적 비움의 희생이 오늘의 교회의 토대를 형성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토대 위에서 우리 후배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많이 일삼았습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풍요와 번영의 늪에서 빠져, 더 많이 더 높이 되려는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자괴감이 앞섭니다.

세상보다 더 세상적이 되어버린 교회와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제는 비워낼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하나님의 원대하신 목적까지 곁들인 채우심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조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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