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왕이신 예수님 (요 19:17~22)
[이 주일의 설교] 왕이신 예수님 (요 19:17~22)
  • 김호성 목사(세교중앙교회)
  • 승인 2018.08.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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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목사(세교중앙교회)
▲ 김호성 목사(세교중앙교회)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 19:19)

‘자유’라는 말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유와 관련하여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유에 대한 정의도 해석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자유인가에 대한 정의가 다릅니다. 그것에 대한 해석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누군가가 자유를 누리지만, 그 자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이런 자유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전쟁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세상에서 횡행하는 ‘모순된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정해야 하는 자유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자유입니다. 그것은 죄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사탄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 세 가지 자유가 완성되는 날 천국이 도래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천국은 온전한 자유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자유의 혼란’을 끝내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온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주시려고 제사장으로 오셨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주시려고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삼중 직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즉 제사장, 선지자, 왕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을 때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2). 이 말씀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동방박사들의 말입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롯은 이 말에 당황하고 분노하여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끔찍한 살해가 일어나기 전에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예수님의 왕이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포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마 27:11). 예수님은 자신의 왕 되심을 부정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 19:18~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 좌우편에도 같은 형벌을 받는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이 패를 써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걸었습니다. 그 내용은 ‘유대인의 왕’입니다. 총독은 세 가지 언어로 왕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써 줄 것을 부탁했으나 빌라도가 거절합니다. 총독은 그 당시 세계적으로 사용되던 언어들을 사용하여 왕이라는 표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행동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왕으로 오신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왕권 회복과 왕으로서 통치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통치자는 사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기 위해서는 사탄을 왕좌에서 끌어내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이미 이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기 여자의 후손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셔서 하실 일은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고, 마귀는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 말씀이 모두 성취가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함으로 예수님의 발꿈치가 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 지 3일 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마귀의 머리가 깨지면서 마귀가 가지고 있던 왕권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히브리서 2장 14~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으신 지 3일 만에 죽음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심으로 마귀의 왕권을 무너뜨리시고 통치권을 회복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회복하신 예수님은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셨습니다. 마귀의 왕권 행사의 핵심은 ‘죽음’입니다. 모든 인류는 마귀가 휘두르는 ‘죽음’의 통치 앞에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복종해왔습니다. 실제로 그 누구도 비참한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왕권 행사의 핵심은 ‘생명’입니다. 죽음에서 종노릇하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예수님을 믿을 때 성도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마귀의 종노릇과 사망의 저주가 예수님을 믿을 때 풀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되는 예수님의 생명통치 이야기는 풍성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왕권 행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세세토록 영원히 계속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통치하심

그렇다면 왕이신 예수님께서 지금은 어떻게 통치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을 통하여 하십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왕권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7~15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성령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아니 성령님의 통치가 예수님의 통치입니다. 성령님께서 통치하시는 핵심 역시 ‘생명통치’입니다. 그것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통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가르치심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면서 책망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통치를 통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종이 됨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의에 대하여도 기준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하여 가르쳐주십니다. 성령님은 심판에 대하여도 말씀하십니다.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이미 사탄이 예수님에 의하여 심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성도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므로 생명통치를 이루십니다.

성령님께서 다스리시는 통치의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을 근거로 사망권세를 극복하게 하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통치를 바르게 받을 때 다음과 같은 생명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회복하셨습니다. 부활하시기 전에 이 세상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망권세’를 휘두르면서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사망 앞에 모든 인류가 절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죽음의 권세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망 권세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너뜨리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사망’으로 공격했으나, 예수님은 ‘부활’로 사망을 제압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부활로 ‘머리’가 깨졌습니다. 모든 왕권이 예수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왕권을 인수하셨고 통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통치는 ‘사망’ 통치가 아니라 ‘생명’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율법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생명통치’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온전한 자유,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하시고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온전한 자유가 완성될 것입니다. 왕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샬롬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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