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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리라 (렘 33:1~9)김효민 목사(광주 봉선중앙교회)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 온전한 치유와 회복 기도하세요

▲ 김효민 목사(광주 봉선중앙교회)

요절: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예레미야 33:6)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청년실업 대란으로 젊은이들의 불안한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행복하지 못하다는 통계도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낙태, 자살, 매춘, 음주소비량, 성형수술, 이혼, 저출산, 사교육비 등이 모두 OECD 국가 중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절대 진리를 거부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제 간통도 죄가 아니고, 동성애도 괜찮고, 혼전성관계는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최근에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동성애 퀴어축제가 버젓이 벌어졌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타락의 길을 가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어찌합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자신의 조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참혹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겠습니까? 개인적으로도 낙심의 상황이고, 국가적으로도 절망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있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1절). 비록 몸은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이지만 그곳에서 더욱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히려 고난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 받는 감옥이 바로 은혜를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그때가 바로 주님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2절). 여기에서 ‘일을 행하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오사흐’이고, ‘만들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요체르’인데, 두 단어 모두 창세기 1장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이 일을 작정하시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러분,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나 자신을 보면 낙심이 되고 절망이 보일 것 같은데,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창조주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시고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세 번 씩이나 반복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의 인격과 명예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고 강한 것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 인격과 명예를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계획을 잘 세우고서도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든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적 권능을 가지셨고, 언제나 변함없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도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우리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작정하셨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구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 이루셨고, 거기(십자가)에서부터 우리의 새로운 삶은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삶입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와 능력이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마음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절).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지 않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까요? 어떤 응답을 약속하셨습니까?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놀랍고 위대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조국의 패망을 앞두고 있는 예레미야와 백성들에게 뭔지 모르지만 크고 은밀한 일을 이룰 테니 절망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어려우십니까? 대책이 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사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성도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풍랑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는 ‘크고 은밀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6절). 하나님이 이 성읍을 치료해주신다는 것입니다. 4~5절에 보면 예루살렘이 참혹하게 파괴됩니다. 성읍은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시체로 가득 찼습니다. 그야말로 끔찍한 참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입니까? 바벨론의 공격에 의한 것입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5절).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백성들을 살육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분노를 퍼부으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악행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더 이상 자비와 은총을 베풀지 않고 관계를 단절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니까 유다백성이 이방나라(바벨론)에 패하고 죽임을 당한 것은 군사력이 약하거나 외교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자들을 다시 고치시고 온전히 회복시켜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여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고,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생활을 하는 게 끝이 아니라, 70년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이고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실 크고 은밀한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은 그 성을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읍을 심판하셨을까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하기 위해 썩은 옛것을 도말해버리는 것입니다. 썩은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비록 고통스럽다 해도 참된 회복을 위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었듯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다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평안이 넘치고 진리로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깨어짐과 상처들이 있습니까? 우리 역시 죄로 인해 다양한 상처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고침 받아야 합니다. 누가 고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자들이 그 죄로 인해 치명적 상처를 입고 신음할 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치명적 상처를 치유하시고 영원히 멸망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혹시 또다시 상처받고 깨어짐 가운데 있다면 겸손히 주님 앞에 나가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겼다면,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사람에게 받은 상처, 환경 때문에 당한 고난, 육신의 질병 등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의 치료의 손길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치유와 회복에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철저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8절). ‘내게 범한’이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시는데, 인간의 죄는 결국 하나님께 지은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백성이 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악행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 문제가 먼저 해결될 때, 성읍은 치료될 것이고,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고침받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들이 고침 받고, 가정이 회복되길 원하십니까? 사회가, 민족이 새로워지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자리에 나와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 성을 치료하리라.”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우리의 다음세대를 살려주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살려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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