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제사장이신 예수님 (히 4:14~16)
[이 주일의 설교] 제사장이신 예수님 (히 4:14~16)
  • 기독신문
  • 승인 2018.08.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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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목사(세교중앙교회)

진정한 해방과 쉼의 은혜는 제사장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 김호성 목사(세교중앙교회)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4:14)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함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타락을 전제합니다. 타락이란 어느 위치에서 아래로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그 떨어진 곳에서 원래의 자리로 올려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눈앞에 실존하는 것이 분명한 증거입니다. 우주만물의 실존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한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피조물이 인간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보면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무한한 영광을 나눠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최고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유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최고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 중에 자유도 포함이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정할 수 있는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인간은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영광인 영생을 누릴 수도 있었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습니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후자를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죄와 사망이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죽음에 처해졌습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타락 상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소망 대신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이 회복의 소망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부에서 소망이 와야 했습니다. 죄에 빠지지 않은 구원자가 외부로부터 와서 인간을 건져내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을 실행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실행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인 아담이 하나님이 되려다가 타락한 것을 고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인간은 지금도 하나님이 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중요한 직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사람의 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지은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방법이요 수단입니다. 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제의 방법이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 제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구약에 많은 제사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님이 드리는 제사의 모형이요 그림자였습니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정해진 성전에서 제사를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장들도 수시로 바뀌었고, 제물도 제사 때마다 새로운 것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타락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제사의 완성자셨습니다.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의 3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입니다. 제사에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제사의 세 가지를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의 3요소를 온전히 이루셨고, 제사장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과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말씀이 히브리서에 풍성하게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완벽하게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6)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흠이 없는 제물이셨습니다. 화목제물이셨습니다. 또 다른 제물이 필요없도록 우리를 대신하여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성전, 제사장,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 완벽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어디에서 제사를 드리셨습니까? 바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이 제사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성전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제물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이 임합니다. 모든 죄로부터 구원이요 해방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타락의 문제와 죄의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죄의 세 가지 영역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죄책감’과 ‘죄의 형벌’과 ‘죄의 능력’으로부터 구원받으며 해방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첫째, 죄책감에서 해방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예수를 믿는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죄와 관련하여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정죄함, 즉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살아간다면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죄책감에서 자유를 누리며 삽니다. 물론 죄를 지었을 때 찾아오는 죄에 대한 자각은 소중합니다. 그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구원의 자유를 상실하고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면 복음의 축복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성도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서 용서의 기쁨을 누리며 삽니다.

둘째, 죄의 형벌에서 해방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심판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 대신 죄의 형벌을 모두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죄의 형벌로부터 용서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죄와 관련하여 누리는 세 번째 축복은 죄의 능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0~11절입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제는 죄가 성도를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유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죄는 우리에게 더 이상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죄가 우리를 종으로 부리지 못합니다. 이제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의 능력에 대하여 거부할 수 있고 사탄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전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제물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도는 히브리서 4장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는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즉 긍휼하심은 은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죄책감으로부터, 죄의 형벌로부터, 죄의 능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8월은 광복의 달이요, 해방의 달이요, 휴가와 쉼의 달입니다. 진정한 해방이 어디에 있습니까? 진정한 쉼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예수님이 쉼을 주십니다.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쉼을 주십니다. 진정한 광복을 주십니다.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이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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