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단순한 순종이 그립다 (행 17:1~5)
[이 주일의 설교] 단순한 순종이 그립다 (행 17:1~5)
  • 김병국 기자
  • 승인 2019.04.1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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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가져옵니다

조현석 목사(해운대신일교회)
조현석 목사(해운대신일교회)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 17:3)

짐 엘리엇 선교사의 순교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위튼 칼리지를 졸업한 짐 엘리엇은 오랜 준비 끝에 1952년에 친구 네 명과 함께 에콰도르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짐 엘리엇을 비롯한 일행들은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1956년 원주민들에 의해 전원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총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주민들에게 창에 찔려 죽는 순간에도 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교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막다른 상황에서도 총을 쏘지 않았고 오히려 원주민들이 찌르는 창에 맞아 모두 순교한 것은,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가져갔을 뿐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을 죽이기 위해 가져간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남편을 무참하게 죽인 에콰도르 아우카족을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여자를 해치는 것을 비겁한 짓으로 여기는 풍속 때문에 엘리자베스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아우카 부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10년 후에는 자신의 남편과 동료 선교사들을 창으로 찌른 장본인인 ‘키모’라는 사람이 이 부족 최초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짐 엘리엇은 서른 살도 채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학교 다닐 때 쓴 일기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영원한 생명보다 자신의 목숨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는 창을 들고 달려드는 원주민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우카족은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자책하며 선교사를 그만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짐 엘리엇이 복음을 한마디조차 전하지 못하고 순교했을 때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의 죽음이 얼마나 헛되고 무익한 죽음이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의 순전한 순종을 통해 아우카족 전체를 복음화시켰고,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선포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입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선포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데살로니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될 때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유대인들은 복음을 시기하고 예수를 전하는 바울과 실라를 미워해서 불량배들을 선동해 온 마을을 소동케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이사 외에 또 다른 왕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로마의 지도자들(읍장)에게 고소합니다.

하지만 그곳의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에게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이 바울과 실라와 합류하는 것은 생명을 건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불량배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가이사를 거역한 반역죄로 처단하려 했습니다. 그렇기에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에는 희생과 고난과 핍박이 예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따르는 데에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도 속하고, 동시에 저기도 속할 수 없습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주님도 함께 사랑할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7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뿌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말씀을 순종할 때 나에게 찾아올 핍박과 고난, 손해의 두려움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생명이 있고,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처음에는 듣고 깨닫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영광과 부요함을 포기하지 못해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오스 기니스 박사는 그가 집필한 책에서 세계의 교회사를 분석하며 유럽과 서구의 교회가 몰락하게 된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유주의와 세속화 그리고 물질주의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이제 막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남미와 아프리카 교회를 향해서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물질적인 풍요와 자유주의 사상이 퍼져 나가게 되면 유럽과 미국의 교회들 같이 침체되고 결국은 몰락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생명의 말씀에 목숨을 걸고 온전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싹트게 하시고, 그 열매로 인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맛보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경건한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은 핍박을 무릅쓰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사랑의 수고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소망 가운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죽음을 뛰어넘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부요함과 물질적인 풍성함에 함몰되지 않고 그 유혹을 거부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고 그분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 제자들이 풍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할 때 두려워하며 배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어찌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라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때 주님께서 깨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신가 하는 것을 확신하고, 그 분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며, 그 분이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의 주권을 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주 만물의 최종적인 결정권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심을 단순하게 믿을 때 우리는 환경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이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서도 두려워하고, 예수님이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순종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순전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가져옵니다. 헬라인의 무리들과 귀부인들은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예수 믿다가 그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버림받고 손해나 핍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분이 자신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정도로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었던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주신 구주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의한 온전한 순종으로 그들의 삶에는 믿음 소망 사랑의 역사, 즉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교회의 소망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과 쾌락을 숭배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말씀이면 단순한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핍박과 손해가 있더라도 온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며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러한 찬송을 하며,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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