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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깊은 감사(시 126:1~6)문홍선 목사(덕소교회)

믿음으로 은혜의 샘을 깊이 파세요
하나님과 관계 회복에 초점 맞춰 깊은 감사 경험하는 성도 돼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 문홍선 목사(덕소교회)

예수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마음에 은혜의 샘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이 은혜의 샘이 되는 것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에게 값없이 부어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은혜 받으면 받을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은혜의 샘이 깊어지면 그 깊이만큼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의 샘물을 깊이 파야 합니다. 그래야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포로로 잡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으로 풀려나 귀환하여 쓴 감사의 시편입니다. 귀환은 그들에게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꿈꾸는 것 같다고 감사의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시편을 써서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불렀습니다. 우리에게도 감히 바랄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감사가 늘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는 흘러넘치게 될까요?

첫째로 감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흘러넘칩니다.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들은 70여 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불행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속히 하나님을 떠납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 접어들어 다윗과 같은 선한 왕도 있었지만, 많은 왕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나라와 혼인하여 국교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이방결혼과 함께 자연히 이방 신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죄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남유다 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갈라지게 됩니다. 200년 동안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그 후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 당하고 맙니다. 포로로 끌려가 노예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의 비참함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난 속에서 괴로울 때 그들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인류의 모든 비참함도 바로 하나님을 떠난 데서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타락도 하나님을 떠나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택한 성도는 고난 속에서 기도할 마음을 갖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의 감사는 바로 고난 속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회복에서 오는 감사였습니다.

2절에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감사의 웃음이고, 감사의 찬양입니다. 이들이 아무 것도 할 힘이 없고 소망이 없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울며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적을 나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칙령을 내려 귀환을 허락한 것입니다.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면서 꿈꾸는 것처럼 들떠서 웃음이 가득하고 감사 찬송이 나왔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감사함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갑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형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지만 원망과 불평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감사하고 충성했습니다. 그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에, 그는 형들이 자신을 팔아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냈다고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그의 초점은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가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 말년에 감옥에 갇히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감사가 넘쳐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원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을 구원하시고 예수 믿게 하셔서 사도로 삼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아니었을 때에는 비방자였습니다. 감사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만나 구원을 받은 후에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절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었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리셨다면 구원받은 은혜의 샘물에 다시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다시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 부터입니다.

둘째로 감사는 은혜로 변화된 마음에서 흘러넘칩니다.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남방 시내는 팔레스틴 남쪽 네게브지역을 말합니다. 마른 광야에 있는 남방 시내는 우기철이 아니면 물을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시내입니다. 그런데 우기철이 되면 물이 흘러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은혜의 단비를 내려 소망 없는 인생에게 은혜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감사는 타락한 인생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강퍅합니다. 타락한 마음에는 감사의 꽃이 피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에 은혜의 단비가 부어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감사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 마음이 남방 시내와 같습니다. 내 메마른 심령 위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 은혜의 단비가 부어지면 마음의 딱딱한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부드러워져서 생명이 깃들게 됩니다.

깊은 감사는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0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거듭나서 그 마음이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어서 그 마음의 근원에서 감사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는 믿음의 태도에서 흘러넘칩니다.

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린 결과입니다. 70년 동안 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응답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특히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고 믿음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고난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정금과 같은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깊은 감사는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옵니다. 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눈물로 기도할 때에는 나 혼자 있는 것 같아 서러워서 울었는데, 응답 받고 나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나의 고난의 자리에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나를 엎고 앉고 계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울고, 기뻐서 우는 것입니다.

성도의 성화의 길에는 원하지 않는 어려움이 계속해서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선을 환경에 두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아는 것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자녀에게 채우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환경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샘을 깊이 파시기 바랍니다. 깊은 감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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