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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바룩의 두루마리 (렘 36:1~10)이은호 목사(옥인교회)

자녀와 함께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복된 가정이 됩시다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렘 36:10)

▲ 이은호 목사(옥인교회)

예레미야 36장의 배경이 된 유다 여호야김 제4년은 주전 605년입니다.(1절) 그 해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와 이집트 연합군과 싸워 이겨 고대 근동에서 종주국의 면모를 세웠던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소명을 받은 지 23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역의 반환점을 돌고 있을 때(렘25:1~3), 하나님께서는 그가 전한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하셨습니다.(2절) 예레미야가 지난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전해왔는데, 이제 모든 말씀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은 하나님의 구상이었습니다.

문자문화가 아니라 구전문화 속에 살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정확하게 암기하여 불러주었고, 바룩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것은 바룩이 기록한 완전한 인간의 문서였지만,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장기적으로는 예레미야를 직접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뜻을 전하시기 위해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메시지를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에 의해 기록되었고, 필사되었으며, 번역되어 우리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용되던 두루마리는 파피루스로 만들어졌습니다. 길이는 보통 9미터, 폭은 25~30센티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나무 막대기에 말려 있는 형태로 한쪽에서 풀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말씀 기록을 위해 예레미야가 부른 바룩은 예레미야 32장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토지 구매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는 왕의 병참감이었던 스라야(렘 51:59)의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과 왕궁 집무실을 가진 정부 고관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바룩은 로마서를 기록한 더디오(롬16:22)와 베드로전서를 쓴 실루아노(벧전5:12)와 함께 성경을 직접 기록하는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두루마리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기록하는 것은 바룩에게는 고된 일이었으나 가치있는 사역이었습니다. 그가 기록한 말씀은 그 다음 해인 주전 604년에 읽혀지게 되었습니다.(9절)

기록된 두루마리는 최종적으로 왕에게 전달되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선포된 금식일에 성전으로 보내져 유다 모든 성읍에서 백성의 귀에 먼저 낭독되었습니다.(10절) 그 때 예루살렘과 성전 뜰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바룩의 음성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갇혀 있기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상황에서(5절), 바룩이 대신 성전으로 가서 자신이 기록한 말씀 전체를 낭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경고를 받은 유다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재난을 면하고 그 악과 죄를 용서받기를 원하셨습니다.(3절) 바룩이 모든 백성에게 낭독했던 공간은 성전 새 문 어귀 곁에 있던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이었습니다. 사반은 요시야왕 시대에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왕에게 읽어주었던 인물입니다.(왕하 22:10) 그의 아들 그마랴의 방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경청했던 사람은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였습니다.(11절) 미가야는 왕궁으로 내려가 고관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말씀에 대해 전했고, 모든 고관은 바룩이 직접 두루마리를 가져와 그들에게 낭독하기 원했습니다. 바룩이 그들에게 두루마리를 가지고 가서 직접 낭독했을 때 그들이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겠다고 말했습니다.(16절) 저들은 진정성을 갖고 바룩의 메시지를 받았고, 예루살렘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문자가 있고 책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은 매우 큰 복입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되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신 6:6~9)

하나님의 뜻이 먼저 가정 안에서 자녀들에게 잘 전달되기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시대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의 분노를 살만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정교육의 실패에서 비롯된 모습입니다. 한 사회를 이루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대의 모든 가정이 신앙적인 교육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먼저 왕실이 하나님의 법도에서 멀어졌고, 고관들과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혼동 속에 살았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부지런히 전달되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이 안전하게 될 것이며, 위협하던 강대국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이라는 거짓 메시지에 희망을 두었습니다.

오래 전 가나안 땅에 정착했던 조상들은 각 가정마다 두루마리 한 권씩 갖고 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교육의 초점을 하나님 말씀에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었던 말씀을 어디엔가 기록하여 자기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그래서 서서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안에는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던 집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렘 32:29) 그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 대신 우상을 섬기는 일을 자녀들과 열심히 행하였습니다. 바룩이 쓴 두루마리가 낭독될 때에 사태의 심각성을 고관들은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그 두루마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야김 왕은 낭독하는 말씀을 들으며 요시야 왕처럼 자기 옷을 찢는 대신, 두루마리를 찢어 추운 겨울날 난방을 위해 피어 놓은 화로 위에 던졌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미래만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마저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다시 두루마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두 번째 두루마리는 첫 번째 두루마리보다 훨씬 더 길었습니다.(32절) 바룩의 두루마리는 성경 안에 포함되어 온 세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두루마리의 기록자이신 하나님은 다시 두루마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첫 개신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Karl Gutzaff, 1803~1851)는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공부할 시기에 마구 제조 기술을 배우는 곳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세에 프러시아 왕에게 자신의 비전을 담은 편지를 보내어, 왕의 지원으로 할례 대학에서 신학교육을 받고 학업을 마치고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귀츨라프는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 호에 통역관 신분으로 승선하여, 1832년 7월 17일 한국 장산곶 근해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 땅에 상륙하였습니다. 한문 지식을 가진 그는 한국인과 접촉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조선 왕이 하나님 말씀을 읽음으로 유익 얻기를 갈망하여 선물과 함께 성경을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회신을 기다렸습니다.

바룩이 만난 고관들이 왕에게 두루마리를 가져가듯 선교사도 그런 마음으로 왕에게 자신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보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보낸 선물과 성경은 한양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모든 선교 행위는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대도의 관리들과 서민들이 성경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귀츨라프는 감격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렸던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곳을 선교기지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소원은 19세기가 지나기 전에 은둔의 나라 조선에서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6장을 읽으면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하며 영향력이 있는지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두루마리에 담긴 예레미야의 말이 하나님 말씀이 되고, 바룩이 두루마리의 말씀을 낭독할 때 예레미야의 음성을 대신한 것처럼, 가정에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낭독하는 말씀은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영적인 환경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보내어진 바룩과 같은 역할을 우리 시대에 수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낭독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 더 아름다운 미래가 준비되는 은혜가 모든 가정에 채워지기 바랍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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