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민 목사(전주드림교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누리는 행복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요절: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사도행전 24:5)

▲ 홍창민 목사(전주드림교회)

지난 2010년에 번역 출판된 책 가운데 <행복은 전염된다>(CONNECTED)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에서 약 32년간 1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셜네트워크 분석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행복할 경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행복할 확률은 15%가 상승했습니다. 다음 단계에 있는 친구의 친구에 대한 행복의 확산 효과는 10%, 3단계인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 대한 확산 효과는 6%가 각각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4단계에서는 그 효과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영향력은 직간접적으로 그와 관계된 사람에게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는 한 사람이 하루에 주변 50여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행복하면 주변에 있는 50명의 사람들에게 행복한 영향력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나면 50여 명의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오늘날 인간 사회 네트워크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훨씬 더 강력하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전염시킵니다. 이를테면 전염병, 돈, 폭력, 비만, 음주. 흡연, 이혼, 우울증, 자살, 분노, 범죄행동 등등이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을 전염시킵니다. 다시 말해서 소셜네트워크가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4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전염되면서 나라마다, 도시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당시에 유럽 남부에서 북부까지 페스트가 퍼지는데 약 3년이 걸렸습니다. 하루 평균 3~5km씩 확산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몇 해 전 우리나라에 호흡기 증후군인 사스나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에는 하루만에 1만3000km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가 불과 하루 사이에 캐나다까지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발병하자마자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지구촌 전체가 위험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나병이나 악성 피부병 같은 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철저하게 격리시키도록 명령합니다. 제사장이 그러한 병을 진단하는 과정도 까다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는 밀접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런 병에 걸리면 전체에 전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율법에서는 근친상간의 죄를 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동물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엄하게 금합니다. 나아가 요즈음 문제가 되는 동성애 문제도 다룹니다. 그런 자들이 발견되면 과감하게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한 죄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믿음 없는 백성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원망이나 불평, 우상숭배는 급속도로 확산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야기시켰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원망이나 불평, 우상숭배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철저하게 이것을 차단시켰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 금송아지 사건,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의 범죄를 처단하는 것을 보면 철저하게 죄를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러한 것들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변호사 더둘로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가리켜 ‘전염병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참으로 고발하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바울을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나사렛 예수로 전염시키니, 하루 빨리 조치하여 처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그러한 욕설을 듣기 어렵습니다만 과거 어른들은 아주 못된 자식을 가리켜 ‘염병할 X’이라고 욕했습니다.

성경에는 점잖하게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를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꾼다면 변호사 더둘로는 바울을 가리켜 “이 사람은 염병할 X입니다”라고 총독에게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아주 나쁜 사람이며,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염병이 왜 무서운 것입니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흔히 ‘역병’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치료약이 없었기 때문에 한 마을에 역병이 발병하면 폐쇄 조치를 하고 모든 것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마을로 퍼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많은 무리가 아닙니다. 한 사람입니다. 바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나사렛 예수를 믿는 자로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더둘로가 그들을 대변하여 “이 사람은 염병입니다.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악한 선동가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유대는 물론 로마 전체가 나사렛 이단으로 전염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주변 사람들을 예수로 전염시키는 몹쓸 사람, 당장 재판을 하여 처단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정말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도대체 바울의 삶이 어떠했기에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까요? 우리도 이왕 예수를 믿는 성도로,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 하나님의 교회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전염병 같은 자가 되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친구와 이웃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나사렛 예수로 전염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성경의 역사나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아도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인류 전체를 죄로 전염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에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머물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간의 날이 지나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마실 물이 없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몇몇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 불평이 나중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어버렸고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다단과 온이 당을 짓고, 거기에 250명의 지휘관이 함께 일어나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 시작합니다. ‘왜 너희들만 지도자로 자처하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나름대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기들만 성막에서 궂은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도전 행위를 한 것입니다. 후에는 그들이 서 있던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와 그 일당들, 그에게 속한 사람들과 재물이 산 채로 생매장되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250명을 불살라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즉각적으로 심판하신 것입니까? 그러한 자들을 내버려두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감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지 2년 만에 가나안 땅이 바라보이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릅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2지파에서 한 명씩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들은 돌아온 후에 정탐 결과를 보고하면서 둘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으로 보고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2명의 보고가 아니라 10명의 보고를 더 신뢰하면서 자기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정하여 미리 절망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쪽 보고자의 숫자에도 큰 차이가 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좋은 것에 영향을 받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좋지 않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결국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전염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람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무려 40년 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염시켜야 하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신앙공동체 안에서 다른 성도들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캠퍼스에서 친구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부류끼리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도 생각이나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너지도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어서 좋은 에너지끼리, 그리고 나쁘고 악한 에너지끼리 서로 끌어당기며 모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자들 주위에, 선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 주위에,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동호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카카오톡이나 밴드를 통하여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부류의 사람과 신앙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겠습니까?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평이 많은 사람들 주변에는 꼭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중창 삼중창을 하고, 제창을 합니다. 또 교회가 어떠하다느니, 아무개가 어떠하다느니 하면서 북을 치고 장구를 칩니다.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불과 몇몇 사람들이 신앙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전염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더둘로가 바울을 향하여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고 말했던 것처럼 신앙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정말 전염병 같은 자입니다. 이왕 우리가 전염병 같은 존재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전염시키는 자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사도 바울만큼은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 역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전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우리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이 더욱 아름답게 변하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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