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3·1운동 100주년 정신 (요 12:24~27)
[이 주일의 설교] 3·1운동 100주년 정신 (요 12:24~27)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9.02.2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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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훈 목사(익산꿈이있는교회)

3·1운동 주도했던 믿음의 선배 희생과 헌신 이어갑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노지훈 목사(익산꿈이있는교회)
노지훈 목사(익산꿈이있는교회)

2009년 12월, 오래된 고미술품의 진가를 확인하며 감정하는 ‘진품명품’ 739회 방송에서 한 남성이 한문으로 글씨를 쓴 액자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글씨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남긴 ‘경천’이라는 작품이며, “하늘을 우러러라. 하늘의 뜻에 거스르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909년 2월 7일 독립회복을 위해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며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끊은 그분의 지장 날인이 담겨있었습니다.

시청자들과 방청객들은 이 작품의 가격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전광판에 내보낸 숫자는 0원이었습니다. 모두들 이 작품이 가짜라고 생각을 할 때쯤 평가단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의 작품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이 작품에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의 가격은 천억이나 백억 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밝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같은 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는 로마 치하에 고통 받던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과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국치를 당했습니다. 국토를 빼앗기고, 인권이 유린당하고,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에 우리 백성들은 억압받았습니다. 무죄한 사람들을 까닭 없이 연행하여 투옥하고, 고문하고, 옥사시키는 공포정치의 만행이 35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빼앗고 모든 것을 가지려 했습니다. 고종을 독살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했습니다. 꽃다운 소녀들을 일본종군 위안부로 끌고 가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해대고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나라를 잃은 가련한 백성들은 강제노역, 착취, 탄압, 박해 등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또 겪었습니다.

이 같은 압제를 견디지 못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 3·1운동입니다. 나라를 빼앗긴지 9년 만에 다시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뜻으로, 일제의 총검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방곡곡에서 맨 주먹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비서명자를 포함한 48인 대표 가운데도 24명의 기독교인이 참여하였습니다.

역사 자료에 의하면 이 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1920년까지 계속되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집니다. 당시 전국 218개 군 가운데서 212군이 동참했습니다. 그해 3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전국적으로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체포된 수는 4만6948명이며, 교회 건물 파손이 47곳이며 학교 파손 2곳, 민가 파손이 715채에 이릅니다.

6월 30일까지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종교인 중 장로교인 1461명, 천도교인 1416명, 감리교인 465명, 불교인 66명, 천주교인 57명, 유교인 56명이라는 발표도 있습니다. 전체 구속자 중에 기독교인이 20~3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은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대비 1.5% 정도밖에 안되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창조적 소수 기독인들과 교회가 희생한 결과입니다.

그 중에도 수원의 제암리교회(提岩里敎會)가 가장 잔혹한 참상을 당했습니다. 1919년 4월 15일 낮 2시경 아리다(有田後夫)라는 일본군 중위가 제암골에 나타나 교인들을 감리교 교회당에 다 모이게 한 뒤 밖에서 문을 잠가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석유를 뿌려 불을 지른 후 안에서 나오려는 교인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둘려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30명이 불에 타 죽었고 교회당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렇게 죽거나 다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4~25)

우리 주님이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바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지녀야 하는 가장 훌륭한 자세는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삶입니다. “네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을, 관념이나 묵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3·1운동에 자신을 던져 희생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뒤를 따르고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서 희생하며 한 알의 밀알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자랑스러운 그들의 신앙을 지금 우리가 먼저 알고, 다음세대에게 전해야 합니다.

지금도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시키고,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 등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듭니다. 침략을 합리화하는 역사교과서를 편찬하고, 서구열강과 공산세력으로부터 동양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도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지금까지 우리를 위협합니다. 마치 사단이 우리가 과거에 받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잊어버리게 위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옛 역사를 다음세대에 충실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서 ‘전쟁을 모르는 세대’라고 말합니다. 4~50년이 지나자 그들이 나라의 오피니언 그룹(opinion group), 곧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살벌한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어 본 일이 없습니다.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구경한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가 다 죽고 나자 결국은 하나님 없는 역사가 이 세대에게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요셉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났을 때(출 1:8) 이 전 세대에서 흘렀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다음세대가 알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래서 알려야 합니다. 반드시 역사를 전해야 합니다.

최근 한 교회에서 동계수련회를 마치고, 청소년들에게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 작업을 모티브로 만든 <말모이>라는 영화를 단체 관람하게 하고 역사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매우 유익한 시도입니다. Z세대는 설교로 듣는 것보다 미디어를 통해 직접 보고 공유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들에게 말씀으로 전달하고 미디어를 통해 역사를 느끼게 해주면 더 큰 공감이 형성됩니다. 전 세계를 장악한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마다 자신들의 역사박물관을 세우고 후손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3·1운동의 현장을 보여주고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을 때 “대한민국 전체가 독립을 믿으니 독립이 될 것이요, 세계의 공의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독립이 될 것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독립을 원하시니 독립이 될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분이 남기신 또 다른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웃 한국을 유린하는 것은 일본의 이익이 아니다. 원한 맺힌 한국인 2000만을 억지로 당신 나라 국민으로 만들지 말고, 우정 있는 2000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에 이익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보며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 때문에 온 국민이 기독교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본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일치와 연합운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당시 전화와 전보는 일본의 완벽한 통제를 받았고, 파발과 봉화 그리고 철도와 우편도 장악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함경북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3·1운동이 일찍 일어난 동네와 늦게 일어난 동네의 날짜 간격이 1달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기독교계의 교단 조직화’라고 설명합니다.

1907년 장로회의 독노회 조직 후 장로회는 ‘총회-노회-시찰회-당회’, 감리회는 ‘연회-지방회-구역회’로 연결되는 조직망을 가졌습니다. 1918년 일제가 조선기독교를 장악하려고 협의회를 조직하려 하자, 이에 대항해 연합단체를 결성합니다. 이때 조직된 연락망으로 인해 만세운동은 매우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나라를 살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배포하며 만세를 부를 때만해도 우리 민족은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기독교는 분열과 다툼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교파가 갈라지고, 교회가 분열되면서 기독교 내부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반기독교 정서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 보다는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이 올린 기도처럼 우리에게도 다시 연합과 일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3·1운동 당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카타콤(catacomb)의 신앙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일본을 정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 조선에게 다시 자유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들의 희생을 본받고,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으며,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한국교회로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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