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옛적 일을 기억하라 (사 46:8~13)
[이 주일의 설교] 옛적 일을 기억하라 (사 46:8~13)
  • 기독신문
  • 승인 2018.06.2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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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 속에도 하나님 은혜 함께 하심을 기억합시다
▲ 맹일형 목사(왕십리교회)

우리는 대체로 좋았던 기억은 오래가기를 원하고, 나빴던 일은 기억조차 하기 싫어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사야 46장은 바벨론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패권국인 바벨론이 우상숭배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증거하게 했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의 9절에서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며, 과거 이스라엘이 우상으로 패망했던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나온 일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사고가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통의 과거를 잊지 말라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끔찍한 한국전쟁을 동족 간에 치렀기 때문입니다. 전후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그다지 실감나게 들리지 않겠지만, 해방 이전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은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리라 생각됩니다. 올해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68돌이 됩니다. 이 전쟁으로 사상자가 무려 520만, 이산가족이 1000만, 유엔군만도 15만명이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죄악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전쟁은 막아야 하고 없어져야 합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또한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생겨나고, 언제나 인간의 실수로 이루어집니다.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결과를 미리 생각한다면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전쟁이 왜 있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그 깊은 곳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통일독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Richard von Weizsäcker. 1920-2015)는 198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헸습니다. “과거에 대하여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이 멀게 된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독일 하노버 북쪽 베르겐-벨젠(Bergen-Belsen)이라는 도시에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집채만 한 큰 무덤들이 있는데, 유대인 4~5000명이 집단으로 매장된 곳입니다. 그곳 게시판에는 “지난날 역사를 망각하는 백성은 또 다시 그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매이게 되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남북 정상들이 두 차례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하고 지켜보았으나 우리 정부의 조급함이 드러나면서 여전히 북한의 기만전술에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생기는 회담이었습니다. 기대했던 북미정상회담도 외신들의 평가로는 소리만 컸지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직 시작이 아니냐’는 논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나 남한이나 과거의 참상을 잊고 실리적인 것으로만 접근한다면 아마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전쟁이 주는 교훈

한국전쟁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첫째,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사악한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계의 원로로 계시는 한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전에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이념’이라고 하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이념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줄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단지 민족과 통일, 그것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도 민족이면 그만이지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김일성을 만나보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이념이 무서운 줄 몰랐던 것입니다. 이들은 민족 위에 이념이 있습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결과가 방법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인 사회,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입니다.

결국 이들은 이런 논리로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무자비했습니까.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전혀 딴 사람으로 나타나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바라보면서 이념이 사람을 이렇게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다 느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념입니다. 전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념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둘째, 우리는 전쟁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쟁이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한 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인간성이 철저히 파괴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전쟁은 절대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 국토가 초토화되어 버렸고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또한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마음속에 평생의 한을 간직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사실 우리가 독일처럼 쉽게 통일될 수 없는 요인도 바로 같은 민족 간에 이러한 무자비한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는 이 무서운 전쟁의 재난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다는 것을 역력히 보았습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려갔을 때 대한민국은 공산당에 고스란히 함락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엔군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유엔군의 파병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UN(유엔)에는 안전보장이사회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서 군대 파병을 결정하게 됩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은 몇 안 되는데, 그 중에 한 나라만 거부권 행사를 해도 파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거부권을 가진 소련대표가 그날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소련대표가 회의에 불참한 이유는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이 중국의 모택동을 인정하지 않고 대만의 장개석만 밀어주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에 유엔군 파병이 결정된 것입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유엔군 파병은 세계 역사상 몇 번 있었지만 거의 모두 성과가 별로 좋질 않았습니다. 오직 한국에 파병한 유엔군만 성공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넷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 가운데 고난당할 때에 이렇게 많은 구호물자가 보내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 어느 나라가 어렵다고 해도 쉽게 구호물자가 모여지질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는 온 세계가 한 마음이 되어 구호물자를 보내주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 가운데 구호물자로 받은 옷을 안 입어본 사람 있습니까? 구호물자를 안 먹고 산 사람 있습니까? 사람들이 단지 배려심이 많아서 그런 구호물자를 제공했을까요? 구호물자를 보내준 나라들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

같은 원인이 있는 한, 동일한 결과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68년 전에 일어난 전쟁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그 당시와 비슷한 요인들이 생긴다면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쟁을 막는 길입니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확립되어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이 일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직 자유와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이자 과제입니다. 선한 목적에는 선한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68년 전의 일을 기억하며 통일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어떤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치우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북의 정상들이 서로 마음을 비우고 민족을 위해 자신들이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다는 각오에 따라 진정한 평화통일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경험했던 값진 체험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면서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길이고 생명인지, 그리고 무엇이 자유이며,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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