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녀를 키웁시다 (출 2:1~10)
[이 주일의 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녀를 키웁시다 (출 2:1~10)
  • 기독신문
  • 승인 2019.04.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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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하나님의 인도하심 기대하며 믿음으로 양육합시다

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출 2:10)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에 하나는 무엇일까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자녀키우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성공적으로 자녀를 양육한 부모를 발견합니다. 바로 모세의 부모입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나중에 모세는 애굽의 박해 속에 있는 자기 민족을 구해낸 위대한 지도가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세의 어머니 이름이 ‘요게벳’입니다. 요게벳은 ‘하나님의 영광’이란 의미입니다. 그녀는 자기 이름처럼 자녀를 잘 키우는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세의 부모 모습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자녀 양육의 중요한 원리를 배워봅시다.

첫째, 자녀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보십시오

본문 2절에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도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를 낳으면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자기를 닮은 특징을 찾아냅니다. “발가락이 아빠 닮았네” “웃는 모습이 엄마 닮았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달랐습니다. “그가 잘 생긴 것을 보았다”는 것은 모세를 단지 외적으로만 본 것이 아닙니다. 훗날 스데반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모세의 출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행 7:20)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아이를 보았습니다. 외모를 넘어 내적인 아름다움, 아이가 지닌 무한한 영적 잠재력과 미래 가능성에 주목하고 아이를 양육한 것입니다.

자녀의 인생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현재 모습을 보고 자녀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하나님이 보시듯 자녀를 바라보면 자녀에게서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한번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누가 될까봐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제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그리고는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서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을 보고 무시했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에게서 영적 아름다움과 무한한 잠재력을 보셨던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인격을 무시당하는지 모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서 그의 가치와 장점을 발견해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양육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로 자녀를 보호하십시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성장함에 따라 더이상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그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떠나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에 앞서 갈대상자 안과 밖으로 역청과 나무진을 칠합니다. “그를 위하여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3절)

왜 역청과 나무진을 칠했을까요? 갈대상자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집집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칠한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마다 죽음의 재앙이 피해가게 하셨습니다.(출 12:13) 믿음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심령에 예수님의 보혈을 발라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24시간 자녀 곁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혹 그런 부모가 있다고 해도 자녀들이 고마워하기보다 사사건건 참견하는 바람에 자녀들이 질색하고 말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서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떠나보낼 준비도 해야 합니다. 무조전적인 제재나 억압은 자녀의 기를 꺾어 버리고, 심지어 잠재력과 가능성을 사장시킵니다.

어차피 부모가 24시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면, 자녀가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든지 자녀의 마음에 세상의 나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과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에게 구원의 확신을 넣어줄 수 있을까요? 자녀의 신앙교육은 말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신앙교육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교훈하고 훈계하려고만 하고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간과합니다. 자년들이 언제 노여워할까요? 부모로부터 무시당할 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주어야 신앙교육도 먹힙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들도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부모가 적당히 믿고 세속적으로 살면 자녀의 신앙교육은 불가능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십시오

드디어 모세의 부모는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보냅니다. 아기를 죽이려고 그랬겠습니까? 나일강에 띄워보낸 것은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를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딸을 붙여 따라가게 했습니다.

본문의 기록을 보십시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4절) 아기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갈대상자를 주시하며 따라가는 중에 뜻밖의 일을 만납니다. 아이를 태운 갈대상자를 바로의 딸이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그리고는 ‘모세(건져냄)’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우연한 일일까요? 믿는 사람의 사전에는 ‘우연’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를 실은 갈대상자를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온 그 지점에 이르게 하신 것이고, 바로의 공주가 갈대상자가 자기 앞을 둥둥 떠내려가는 그 시간에 맞춰 목욕하러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알고 보니 ‘모세’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녀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놀라운 계획을 갖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부모가 믿음으로 자녀를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자녀가 내 품 안의 자식일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세상을 향해 사명을 감당하도록 파송해야 합니다. 파송하기를 잘 하려면 부모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대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요한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눅 1:66)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이 말은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는 아이, 요한을 보면서 기대감 속에 터져 나온 탄성이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이 기대감을 가지고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지지하고 응원 주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부모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해보려다가 오히려 자녀교육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청소년 사역자로 있었을 때 일입니다. 청소년 상담전문가를 초청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강의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학부모 여러분! 문제 청소년 대부분은 부모가 섣불리 자녀들을 간섭했다가 문제가 커진 경우입니다. 자신 없으면 그냥 놔두십시오. 그러면 자녀들이 훨씬 더 잘 자랄 것입니다. 문제 청소년은 없습니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양육에 대해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간섭하는 대신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자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부모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자녀 속에 있는 내적 아름다움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보혈로 자녀를 보호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십시오. 부디 모세의 부모처럼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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