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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야곱의 영적인 안일함 10년 (창 33:12~34:2)유상섭 목사(창신교회)

철저한 자기성찰로 무기력한 영적 깊은 잠을 깨워야 합니다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창 33:14)

설교키워드 : 야곱의 시련과 역경 20년은 조금씩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으로 빚어진 시기였다면, 이후 10년은 시련이 없는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야곱의 영적인 안일함과 나태함을 가져왔습니다. 야곱은 감사와 순종에서 떠났고, 자신을 위해 살았으며,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끔찍한 두 사건을 통해 야곱을 영적인 안일의 깊은 잠에서 깨우셨습니다. 안정과 평안 가운데 영적인 무감각의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 유상섭 목사(창신교회)

사람들은 누구나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평안하고 안정된 삶은 역동적이고 깨어있는 신앙생활에 방해와 해악이 됩니다.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것은 신앙의 폐해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본문은 에서와 극적인 화해 이후에 야곱이 아무런 염려와 걱정 없이 살았던 10년의 삶을 보여줍니다. 야곱의 평안했던 10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신앙생활에 큰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위협과 에서의 분노로부터 야곱과 그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모든 제안을 지혜롭게 거절했습니다(13~15절). 이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의 약속대로 즉시 벧엘로 돌아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의 서원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상하게도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숙곳으로 가서 집짓고 오랫동안 살았습니다(17절). 야곱은 나중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지만 그 때에도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세겜으로 가서 성문밖에 장막을 치고 그 땅을 구매하고 제단을 쌓았습니다(18~20절). 야곱은 세겜에 정착할 계획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약 10년간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그는 여전히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야곱을 영적인 안일의 깊은 잠에서 깨우는 하나님의 큰 징계가 있었습니다(34장). 이와 관련하여 본문의 중요한 교훈을 생각해봅시다.

첫째, 야곱의 안일함은 하나님께 감사와 순종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12~15절). 에서와 야곱이 화해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결과였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내 동생아”라고 불렀지만(9절), 야곱은 그를 감히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주인”으로 불렀습니다. 야곱은 몸을 땅에 일곱 번 굽혀 에서에게 절했습니다(3절).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도 에서에게 절했습니다(6~7절).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가축 떼를 보냈을 때에도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8절). 자신은 에서의 은혜를 입었고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10절). 야곱은 자신은 종이고 에서는 주인이라고 한결같이 인정했습니다(32:18, 20; 33:5, 13~15절). 그는 종이 주인에게 선물을 바치듯이 에서에게 선물을 바쳤습니다(11절). 개역성경의 본문 10~11절에 4번 나오는 “형님”은 모두 2인칭 단수 “당신”을 부정확하게 번역한 것입니다. 야곱은 감히 에서를 형이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준 큰 선물을 받고 좋은 뜻으로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고 말했습니다(12절). 종이나 다를 바 없는 야곱의 입장에서 에서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여전히 에서를 정중하게 주인으로 호칭하면서 어린 자녀들과 새끼가 있는 가축 떼의 안전과 건강을 핑계로 거절했습니다(13절). 주인 에서가 먼저 세일로 가면 자신은 나중에 천천히 그곳으로 가겠다고 둘러댔습니다(14절). 에서가 그의 종들을 야곱에게 남겨놓겠다고 하자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라면서 사절했습니다(15절). 에서는 결국 군대와 함께 자신의 본거지인 세일로 돌아갔습니다(16절).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은혜로 간섭하시고 야곱을 도우신 결과였습니다. 은혜롭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야곱의 귀향길을 막는 장애물을 모두 제거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즉시 고향으로 돌아기만 하면 되었습니다(31:3, 13; 32:9). 이것은 야곱이 해야 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순종의 마땅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하나님께 감사도 순종도 까마득하게 잊었던 것입니다. 그는 20년 전에 벧엘에서 하나님께 한 서원을 이행하지도 않았습니다(28:21~22). 야곱의 안일한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야곱의 안일함은 자신만을 위한 삶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17절). 17절은 야곱이 자기를 위해서 집을 짓고, 자기의 가축을 위해서 우릿간을 지었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야곱이 자기 자신과 가축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17절에 숙곳이라는 언어유희를 3번 사용해 야곱의 행동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야곱은 먼저 숙곳(수코타)으로 갔으며, 둘째로 자신을 위해서는 집을 짓고, 가축들을 위해서는 우릿간(수코트)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야곱은 그 장소를 숙곳(수코오트)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이 정착한 숙곳은 에서가 내려간 남쪽과 정반대되는 북쪽 방향에 있었습니다. 야곱이 가야할 곳은 가나안 땅의 벧엘이었으나, 그 대신에 자신을 위해 집(바이트)을 지었습니다. 집(바이트)은 ‘벧엘’의 ‘벧’(베이트)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 표현은 야곱이 하나님의 집(벧엘)으로 갔어야 했는데 이것은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집을 짓는 불필요한 일을 했음을 은밀하게 드러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20년 만에 장인이며 외삼촌인 라반을 떠났습니다(31:3). 그는 라반의 추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라반이 그를 해하지 못하게 극적으로 막으셨습니다(31:23~24, 29). 이제 야곱에게 남은 마지막 장애물은 형 에서였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400명과 함께 오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을 때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으로 가는 중이라고 기도했습니다(32:9).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야곱을 에서에게서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안전하게 가나안 땅 부친의 집으로 가게하려고 도우셨습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약 10년간 숙곳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야곱은 이 기간 중에 자신과 가족과 가축만을 위한 살았습니다(17절). 야곱은 다급할 때에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자 야곱은 하나님을 까마득하게 잊고 숙곳에서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야곱에게는 이렇게 안정되고 평안했던 때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신자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당장에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그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삶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야곱의 안일함은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18~20절). 약 10년간 숙곳에서 살던 야곱은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도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호하신 결과였습니다(28:15, 31:3). 야곱은 이제라도 하나님의 명령과 자신의 서약대로 벧엘로 가야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세겜에 정착했습니다. 벧엘은 세겜에서 불과 약 3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야곱은 세겜 성읍 밖에 장막을 치고 백 크시타를 주고 그 주변의 땅을 구매했습니다(19절). 야곱이 세겜 땅을 구매한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을 기다리는 믿음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23:17~20). 야곱은 세겜에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습니다(20절). 이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을 쌓은 것도 일종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12:7~8, 13:4, 18). 야곱은 심지어 자기의 새 이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야곱은 마침내 지금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조상의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은 것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함으로 자신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한 서원을 지켰다고 분명 생각했을 것입니다(28:21). 야곱은 지난 10년 동안 숙곳에서 제단을 쌓은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큰 사건을 통해서 야곱의 영적 안일함을 깨우셨습니다(34:1~2, 35:1). 야곱은 자신이 신앙의 깊은 잠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34장에 기록된 수치스러운 두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못했습니다. 한 사건은 하나밖에 없는 딸 디나가 세겜의 여성들을 구경하러 도성으로 갔다가 강제로 추행을 당한 사건입니다(34:1~2). 다른 비참한 사건은 야곱의 아들들이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도록 속이고 그들이 할례를 받은 후에 회복 중에 있는 남자들을 모조리 살해한 만행입니다(34:13~25).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중요한 의식 할례제도를 세겜의 주민들을 속이는 제도로 악용하였습니다. 야곱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34:30). 하나님께서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침묵하셨다면 야곱과 그의 가정은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할지 모르는 야곱에게 놀라운 충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35:1). 하나님께서 야곱이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그를 섬긴 것을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은 야곱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순종이 없이 산 삶에 대한 일종의 징계였습니다. 이때 야곱의 가족은 이방 신상들도 섬겼습니다(35:2). 하나님께서는 이 기간 동안 인내로 기다리고 기다리셨지만 야곱은 영적으로 안일하고 나태하여 벧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끔직한 사건을 통해서 야곱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야곱의 평안과 안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순종이 없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늘도 목회자와 성도들이 안정과 평안 가운데 영적인 무감각의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큰 징계가 있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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