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요 4:24~39)
[이 주일의 설교]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요 4:24~39)
  • 기독신문
  • 승인 2018.03.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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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복 목사(창훈대교회)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 4:39)

▲ 이상복 목사(창훈대교회)

루터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책에서 “구약을 짜 보아라. 짐승의 피가 나올 것이다. 신약을 짜 보아라. 예수의 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하면 영적인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의 예배인 제사가 드려지는 성막은 예배자들이 가져오는 제물로 인해 죽어가는 짐승의 비명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짐승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로 제사를 드리셨는데, 딱 한 번의 제사였지만 죄사함의 영원한 효력을 가져오는 제사였습니다(히 9:12~14). 그 결과 신약의 예배자는 예수의 피를 의지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담대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예배를 살펴보면 기독교 예배의 핵심 요소인 예수님의 피가 빠져 있을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이유는 예배자들이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지은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이 없다 보니 모든 죄와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함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예배 속에서 어떻게 체험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세 번에 걸친 설교를 통해서 기독교 예배의 독특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독교 예배의 독특성과 관련해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아는 것은 기독교 예배가 다른 종교의 예배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언제부터 시작됩니까?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통해 기독교 예배는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지은 죄에 대한 회개의 열매와 믿음으로 순종한 감사의 열매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삶의 열매를 가져 온 예배자가 예배시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교훈해 주는 요한복음 4장을 통해 예배자는 우리를 만날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문제를 솔직하게 꺼내 놓고 하나님이 베푸실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어떤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지, 그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예배를 마무리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의식적으로 자기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네 남편을 데려 오라”는 주님의 요청에 “저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모든 가식과 위선을 벗어던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예배자는 가장 먼저 자신의 진짜 모습, 즉 죄로 더렵혀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자비와 긍휼이 아니면 단 한 순간도 설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 예배자들의 공통된 경험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며 탄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어느 날 자기 앞에 서 계신 분이 훌륭한 스승 정도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무릎을 꿇으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고 고백했습니다. 누구든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 즉 자신이 얼마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지 얼마나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죄인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다음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솔직하게 꺼내 놓은 문제를 해결 받으면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대면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된 소망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와 문제를 솔직하게 꺼내 놓았을 때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모든 상처와 아픔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맥스 루케도는 <형통한 날의 은혜>라는 책에서 참된 예배를 통해 어떤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그 분의 얼굴을 보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얼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님은 능히 그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얼굴을 바꾸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그 분은 손을 내밀어 근심으로 주름진 자녀들의 얼굴을 펴십니다. 수치와 회의로 그늘졌던 얼굴이 은혜와 믿음의 초상으로 변화됩니다. 그 분의 손길이 닿을 때 눈가에 피곤이 사라지고 절망의 눈물은 평강의 눈물로 바뀝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좀 더 감당하기 힘든 무엇이 필요할거라고 기대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더 간단합니다. 그 분은 예배를 통해 우리의 얼굴을 바꾸십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예배는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병든 심령을 치유하며, 치진 영혼을 회복시켜 줍니다. 심지어 우리 얼굴 표정까지 바꿔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면 사명의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은 사마리아 여인은 영혼 속에서 기쁨의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이 기쁨이 너무 커서 자신만 간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심은 사마리아 여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 즉 사명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8, 29)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동네 사람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 받고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 받고 나니, 자신이 경험한 놀라운 일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게 되면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싶은 불붙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제대로 체험하게 되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단순히 자기 문제를 해결함 받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로까지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예배의 마지막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끝은 예배시간의 마지막 순서인 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진정한 끝과 완성은 우리 삶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면, 변화산의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하는 심정으로 마냥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반드시 자신의 삶의 터전인 동네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동네는 바로 우리 삶의 터전인 가정, 직장, 사업장,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기 구원자가 계시다. 와서 한 번 만나 보라. 나를 변화시킨 주님을 당신도 와서 만나 보라!”고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삶의 터전에서 만나는 분들은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우리의 약점과 허물까지 속속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지만, 우리는 예배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참된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와 자신의 변화된 삶을 증거하는 사명의 자리로 나가면 하나님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열매를 허락해 주십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

한 주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서 시작되고 새로운 한 주간의 삶을 향해 나가는 것으로 예배를 마쳐질 때, 우리의 예배는 단지 예배시간에만 국한된 ‘예배생활’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생활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이 시대에 찾으시는 참 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지루한 일상, 출근길 교통전쟁,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주말이 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금요일입니다(Thank God. It’s Friday!)”라고 외칩니다. 반면에 또 다시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월요일만 되면 소위 ‘월요병’으로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의 월요일은 달라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회복과 치유를 경험한 성도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성도들은 월요일 아침 눈을 뜨면서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월요일입니다(Thank God. It’s Monday!).”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의 능력이 주일뿐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 모든 삶에 함께 동행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력으로 경험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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