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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섬깁시다 (엡 3:1~9)김대환 목사(덕천제일교회)

서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섬깁시다
복음의 큰 복을 받은 성도는 은혜의 비밀을 이웃들과 나눠야

▲ 김대환 목사(덕천제일교회)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엡 3:9)

여러분은 살면서 빚으로 힘든 적이 있나요? 빚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 마음에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모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은 빚을 져보지 않은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항상 긴장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낯선 사람만 걸어와도 혹시 빚을 받으러 왔나 생각합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초인종이 울려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빚은 눌림이 되고 매임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조금 다른 의미의 빚을 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1절,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들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자신이 갇혔다 표현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방인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이 은혜 받은 것은, 자신이 사명자로 쓰임 받는 것은 이방인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빚을 진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 이러한 마음으로 사명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어떤 빚을 졌을까요?

1. 사명을 위해 먼저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괴롭히고 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은혜로 선택한 것입니다. 왜 선택했느냐는 이유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의 선택이 자신의 집안이나 학식이나 출신성분과 관계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을 은혜로 구원하시고 그를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도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1절에 “자신의 선택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라” 표현합니다. 2절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라며,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에게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3절은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7절에서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고 합니다. 이 말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을 선택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가 하나님의 보좌우편에서 왕노릇하는 이 복음의 비밀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때문에 자신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을 받았고, 이방인들을 위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 사명을 위해 신비한 수많은 은사를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의식이 빚진 자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아는 모든 자에게 매우 중요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들을 볼 때 자신이 우월하니 무식하고 무지한 저들에게 내게 있는 좋은 것을 나누어 주겠다는, 그런 높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접근했습니다. 빚진 자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항상 여유가 있으면 내가 먼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접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먼저 선택받았을까요?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의 비밀과 사랑을 나누라고 많은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나의 선택, 나의 축복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내 이웃, 내가 복음을 전해야 될 나의 가족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멸시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빚을 진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왜 나를 먼저 부르시고 이러한 큰 은혜를 주십니까?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내가 섬길 성도를 볼 때마다 빚을 갚은 겸손함으로 무릎이라도 꿇고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사도 구역장도 모든 일꾼이 동일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 왜 여러분을 먼저 부르신 줄 아시겠습니까? 내게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내 가족에게,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생명책에 그 이름 석 자가 기록되지 못한 불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라고 나를 먼저 선택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 믿어 불신 가족들로부터 많은 핍박도 받고 모욕과 고초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불신 가족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해야하는 그 가족 때문에 나를 먼저 부르시고 축복하셨기에 나는 그 불신 가족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빚을 갚은 마음으로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믿는 우리 성도님들이 은혜에 빚을 진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겸손함으로 섬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먼저 내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소개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알기에 절대 높은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빚을 진 자의 마음으로 겸손히 섬길 뿐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까? 내가 은혜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불행하고 괴로운데 누구를 섬길 수 있나요. 내 가정이 복잡한데 어떤 가정을 섬길 수 있나요. 내 공동체가 불안한데 어떻게 눈을 들어 외부를 볼 수가 있나요. 그러니 은혜받고 내가 얼마나 부요하고 풍성한가를 체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날마다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은혜의 비밀은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빚진자의 사명입니다.

저는 교회의 목회자, 교회의 평신도 일꾼에게 이러한 마음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부흥한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힘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내게 주신 것입니다. 왜 교회가 가진 힘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어려움을 겪습니까? 이 빚진 자의 심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부르셨는가? 왜 교회를 부흥시키셨는가? 왜 나를 총대로 총회에 참여시켜 주셨는가? 무엇인가를 위해서입니다. 이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웃에게 쩔쩔매는 것입니다.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직자는 일반 성도에게 쩔쩔매는 것입니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먼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힘을 가지고 돈을 가진 자들이 이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게 주신 이 힘과 이 돈은 이 백성을 섬기라고 주신 은혜임을 알고 사는 사회가 된다면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보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날마다 주의 은혜가 넘치고 주신 은혜로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마지막으로 빚진 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어떤 확신을 가지는가?

11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빚을 갚는 마음으로 가족을 향해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을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곳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라고 먼저 부르신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이 반드시 하십니다.

우리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월한 자세에서 주장하는 자세로 나아가면 안됩니다. 빚을 갚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위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섬기고 지역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이 지역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가족이나 우리교회의 이웃을 볼 때, 왜 우리에게 이렇게 대하지 그런 불편함이나 속상함, 억울함이 아닌, 이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먼저 선택하시고 먼저 축복하셨구나 생각하여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빚진 자의 심정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 때 어찌 이 사회에 왕따가 있고, 갑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강한 자의 학대가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비정한 정치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총회의 일꾼으로 세움받은 사람들은 이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규모나 힘과 숫자로 서열이 매겨지는 교계의 분위기가 아니라 모든 교회가 은혜를 받은대로 서로 빚을 갚는 마음으로 섬기면서 이 사회의 빛이 되는 은혜의 성도와 교회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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