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환난의 유익을 아십니까(롬 5:3~4)
[이 주일의 설교] 환난의 유익을 아십니까(롬 5:3~4)
송기섭 목사(대구 동막교회)
  • 김병국 기자
  • 승인 2017.05.2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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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은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합니다
인내와 연단을 만드는 환난을 통해 생명의 소망을 맛보아야

▲ 송기섭 목사(대구 동막교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의 삶은 물론이요, 가정과 교회, 총회, 조국에 있어서 원하지 않는 환난이 올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들 중에서 환난이 즐겁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환난은 부정적인 요소, 즉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며, 심하면 절망과 좌절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환난의 긍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환난을 이겨낸다면 그 환난이 주는 유익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누리게 됩니다.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는 의미는 5장 1~2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용서함을 받아 의롭게 되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고난은 우리가 범하는 죄로 인하여 오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연단을 시키기 위해서 주시기도 합니다. 여기 본문의 환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진주조개에 모래가 들어가게 되면 이물질이 들어온 것이기에 상처가 나서 너무나 아픕니다. 그러나 그 이물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주조개는 죽습니다. 반대로 고통스럽지만 그 이물질에 받아들이고 분비물을 쏘아내고 덮어내게 되면 나중에 그 이물질은 진주가 됩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딸이 결혼할 때 꼭 진주를 선물로 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눈물이 나더라도 참고 견디면 진주가 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환난이 유익이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릴 때에 집 앞 개울을 건널 때에 징검다리를 통해서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환난은 힘들지만 환난은 잘 견디어내는 사람들에게는 ‘인내’가 생깁니다. 환난을 조깅이라는 운동에 비유해 봅시다. 우리가 조깅을 하게 되면 숨도 차고, 피곤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힘든 조깅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사이 숨도 차지 않고 오래 달려도 피곤하지 않고 잘 참고 견디게 됩니다. 왜냐하면 심장근육이 강해지고, 온 몸의 다른 근육이 강해지므로 견디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올 때에 한 번에 이기려고 하지 마시고, 오히려 환난을 친구 삼고, 환난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굳은살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듯이, 환난을 참고 견딘다면 심령의 근육이 생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환난을 적응해갈 때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못살겠다’, ‘죽겠다’, ‘힘들다’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듯이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만들어 냅니다.

4절을 보면, “인내는 연단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단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계속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므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단단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환난의 과정들, 즉 인내를 통해서 성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환난을 잘 견디면 양적인 측면에서 견뎌내는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인내하고 견디다 보면 이제는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질적인 측면에서 인격이나 말이나 행동이 ‘다듬어지’게 됩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들이 쥐약을 먹고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인이 개를 훈련시키기 위해 고기를 개 앞에 두고서 개가 먹으려고 하면 매질을 했고, 입맛만 다셔도 매질을 했습니다. 이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니 이제는 개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고기를 개 앞에 두더라도 입맛을 다시지도 않고 이제는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개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며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을 구별하는 영리한 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인내의 과정을 잘 이겨내면 연단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연단은 소망을 만들어 냅니다.

4절은 또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합니다.

소망은 목표나 꿈을 말합니다. 환난의 과정의 끝은 소망, 곧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치 개울을 건널 때에 환난의 돌 밟고, 인내의 돌 밟고, 연단의 돌 밟고서 드디어 소망의 반대편 땅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강연료를 받는 사람이 마샬 골드 스미스 교수라고 합니다. 그의 한 번 강연료는 2억 50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의 수업이 비싼 이유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삶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 수업에서 구글과 보잉, 골드만삭스 등 120여 개의 세계적인 기업 CEO와 임원들이 컨설팅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마샬 교수의 수업의 주요 고객인 유명 CEO들이 가장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기업의 미래나 성과에 관련된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금연을 한다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일상의 변화’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그들조차 바꿀 수 없던 것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일상이었습니다.

마샬 교수의 책인 <트리거(Triggers)>에서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트리거는 사격용어로 방아쇠 혹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 책에서는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서술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바꾸는 것에 서툽니다. 환난은 트리거입니다. 환난을 통해서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급격히 불어난 몸무게가,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러운 당뇨판정이 조깅을 유발하는 트리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의지력이 아니라 트리거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나서 단순히 결과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과정의 노력을 측정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운동하려고 내가 집에서 일찍 나왔으나 버스가 오지 않아서 지각을 해 못했고, 또 저녁에 운동을 하려 했지만 약속이 잡혀서 계획에 실패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느냐’입니다. ‘​결과’만 점검하게 되면 실패했을 때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쉬운 반면, ‘노력’을 점검하면 실패하더라도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력을 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나를 막는 외부 요인은 ‘핑계’가 아니라, 나의 ‘노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보다 노력하는 과정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환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연단으로, 연단에서 소망으로 도달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경험했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국 어느 지방에 등뼈에 병이 생겨 40여 년이나 자리에 누워 고생하는 덴데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참으로 좋아서 그 방에 들어온 사람마다 천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무디 선생이 영국에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에 덴데라의 소문을 듣습니다. 무디는 바쁜 일과 중에도 신앙 좋은 덴데라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냄새나는 덴데라 방에 들어가 환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무디 선생은 환자에게 “얼마나 괴롭습니까?”라고 위로하였습니다. 그때 덴데라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풍기면서 말하였습니다.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도 지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천당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는 감사할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디 선생은 덴데라의 방을 나서면서 큰소리로 “나는 오늘 천국을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환난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립니다.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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