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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더 큰 사랑으로 세상을 봅시다(욘 1:14~17)김대환 목사(덕천제일교회)

하나님의 입체적 사랑을 생각합시다
동역자 의식을 갖고 큰 사랑으로 하나님 의를 함께 이루어가야

▲ 김대환 목사(덕천제일교회)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단면적인 것이 있고, 입체적인 것이 있습니다. 우리 연약한 인간은 일반적으로 단면적인 것만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보이는 것만 봅니다. 지금 필요한 사람, 지금 필요한 일 등. 그래서 정작 소중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전체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단면적 시각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큰 사랑입니다. 입체적인 사랑입니다.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속상해도,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가히 짐작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크고 놀랍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이 일어 어려움에 처하자 사공들이 요나를 살려 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결국 15절에 보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게 됩니다. 이후 사납게 뛰놀던 바다는 이내 잔잔하게 됩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으면 요나만을 연단하면 되는 것을, 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공들도 저런 고난을 받게 하시나’하는 의문입니다.

또 다른 의문도 있습니다. ‘요나가 배를 탔을 때 연단하지 말고 차라리 배를 타기 이전에 요나 혼자 걸어갈 때 돈을 잃어 버려 배를 타지 못하게 하시거나, 배를 고장 나게 해 계획이 변경되게 하시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 풍랑으로 여러 사람 괴롭힐 필요가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기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요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니느웨 백성과 요나와 함께 배를 탄 사공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공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몰려온 풍랑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통해 요나의 훈련, 니느웨 백성의 구원, 이 배의 무리의 구원을 동시에 생각하시며 입체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요나와 사공들은 개인적으로 보면 원망을 하고 불평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 이 모든 입체적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요나서 3장과 4장에 보면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회개하라.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왕과 모든 백성들이 사흘 만에 다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요나의 메시지가 너무 능력이 있어서인가요. 제가 생각할 때 요나는 그리 기쁘게 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흘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가복음을 참고해보면, 니느웨 사람들은 이미 요나를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선택하여 자신들의 땅에서 말씀을 전하기 이전에 요나가 불순종하여 큰 풍랑이 일었고,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풍랑이 잠잠케 되고,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자신들의 땅에 들어왔다는 소문을 이미 들은 것입니다. 그러니 요나가 니느웨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니느웨 사람들은 은혜 받을 준비가 다 된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이번에 집회에 오시는 강사 목사님은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분이며, 기도하면 수많은 능력이 나타나고, 이분을 만나는 사람은 모두 다 예수 믿는 능력이 있다더라”고 소개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대감을 갖고 집회에 참여할 것입니다. 요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 니느웨에 입성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에 대한 이러한 소문은 누가 전달했을까요? 두말할 필요 없이 같은 배에 탄 사공들이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목숨을 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이미 하나님은 이 사공들을 사용하시어 니느웨가 회개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입체적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단편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면 입체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계획을 위해서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공들은 인간적인 정을 발휘하여 요나를 살리려 했지만 하나님의 큰 사랑은 인정에 메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느 개척교회의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섬기던 중 교통사고로 인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목회를 잘 해보려고 새벽기도에 충실했고, 한 명이라도 더 예배에 참석시키려 손수 운행까지 한 것인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고로 사람을 죽게 하다니요. 더 기가 막힌 것은 합의를 할 돈도 없어 결국 그 목사님은 구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그곳에 있는 동안 기도하던 중, ‘하나님 앞에서 우연은 없는데 지금 이 곳에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회하다 구금된 목사님을 위해 목숨 걸고 기도하게 됩니다. 결국 이 일 후에 그 개척교회는 영적인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사님이 교도소에서 나와 돌아온 후 변화된 성도들의 모습을 봅니다. 교회에 오니 평일인데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또한 교도소에서 전도한 죄수들이 회개하고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개척 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고, 연약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변화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 교회는 진짜 교회다’라고 생각하여 이후에 더 크게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왜 목회에 최선을 다하는 나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만나게 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돌아가게 하시는가?’라며, 원망하고 불평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체적인 사랑은 이 개척교회 목사님에게 연단을 통해 오직 은혜만을 구하게 하시고, 감옥 안에서 은혜 받고 구원받을 죄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위해, 또한 주변에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많은 불신자들을 위해 입체적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을 하나님은 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풍랑이 있습니까? 남모르는 눈물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옆에 있습니까?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십시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보십시다, 나무만 볼 때는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숲을 볼 때 이해가 됩니다. 이 세상을 보세요. 정치권의 여당과 야당은 자기중심으로 봅니다. 여당은 여당만 생각합니다. 야당은 야당입장만 생각을 합니다. 마치 서로를 필요 없는 적처럼 간주할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다른 정책에 대해 자기입장만 고집합니다. 이 법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전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합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목회자도 소중하고, 성도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새가족도 소중하고 중직자도 소중합니다. 지금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입체적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와 동역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내게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숲을 봐야 합니다.

총회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무만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숲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큰 사랑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지금은 작은 사랑이 아니라 큰 사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큰 사랑과 섭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정말 동역자의식이 필요합니다.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어져 가야할 동역자의식을 가지고 서로 존중하기를 바랍니다. 작은 사랑이 아니라 큰 사랑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9월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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