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다시 웃다(창 18:9~15)
[이 주일의 설교] 다시 웃다(창 18:9~15)
권호 목사(로뎀교회.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 기독신문
  • 승인 2017.06.15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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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찾아오신 하나님을 붙잡으세요
약속을 이루시며 웃게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야

▲ 권호 목사(로뎀교회/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창 18:15)

사라가 웃었습니다. 소리 내서 웃은 것은 아닙니다. 들리지 않는 속웃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느낌을 줍니다. 여러분은 본문을 읽으면서 사라의 얼굴에 차갑게 흐르고 있는 석연치 않은 웃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내년 이맘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을 방문한 천사가 1년 후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24년 동안 기다렸던 아들의 출생 소식이었습니다. 사라는 이 놀라운 소식을 천사들과 아브라함의 뒤편, 즉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 문제는 사라가 이 축복의 소식을 차가운 웃음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절)

차가운 웃음, 쓰디쓴 문제

사라의 이런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라를 너무 쉽게 비난하지 마십시오. 사라가 차가운 웃음을 지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사라는 너무 오랜 기다림으로 마음이 지쳐있었습니다. 5년, 10년, 계속되는 기다림. 우리는 경험적으로 압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어도 너무 기다리다 보면 지칩니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막연한 희망으로 계속 기다리다가,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현상입니다. 사라는 약속을 믿고 24년 동안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희망고문을 받은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사라의 현재 몸 상태는 이 약속을 이룰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75세에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은 99세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보다 10살 어린 89세였습니다(17:1, 17). 출산이 가능하다는 신체적 표시인 생리도 끊어졌습니다. 사라는 이런 자신을 12절에서 ‘노쇠했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히브리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낡았다. 너덜하게 해어졌다’입니다. 낡아서 해어 빠진 몸을 가진 사라, 출산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 뿐입니까. 사라의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상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86세가 될 때까지 10여 년을 기다려도 임신이 되지 않자,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하도록 내어주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의 문화적 관습이었지만, 여인으로서 사라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더구나 하갈이 임신하자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는 당시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16:5).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지난 24년 동안 마음은 지쳐있고, 육체는 시들었고, 상처는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1년 후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니요. 사라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 마른 씨를 뿌려놓고 싹이 날 것을 믿으라는 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웃었습니다. 대놓고 웃지는 못했지만 싸늘한 자포자기의 웃음, 불신의 웃음을 지었던 것입니다. 지친 마음, 육체적 한계, 과거의 상처 때문에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 앞에 내 한계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잘못된 웃음을 지었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싸늘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라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지금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불신의 웃음을 짓고 있습니까.

진짜 문제, 그분을 보지 못하다

사라의 처지를 보면 그녀의 불신의 웃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라가 결정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사라의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현실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찾아오셔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15:4, 17:19). 사라는 그 약속을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사라를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9절에서 천사는 아브라함이 아내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녀의 이름이 ‘사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름까지 알았던 천사가 사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었을까요. 아닙니다. 방문 목적이 사라에게 약속을 주려는 것임을 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천사는 사라가 여자라는 신분 때문에 장막 문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통해 말하고 있지만, 사라가 분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축복의 약속을 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라는 찾아오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사라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에게 찾아오셔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13절에서 지금까지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자신의 존재가 ‘여호와’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리고 14절에서 사라가 지금 잊고 있는 사실,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질문을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뿐만 아니라 사라에게 다시 약속을 주셨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는 부족한 자신과 현실만 보다가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휩싸여 떨며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라의 대화 장면이 끝이 났습니다. 아쉽습니다.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본문에서 냉랭한 기분까지 느껴집니다. 이게 다 사라의 잘못된 웃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사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만드시는 웃음

사라의 불신의 웃음으로 시작된 한 해가 지났습니다. 정확히 1년 뒤 신기하게도 사라는 다시 웃었습니다(21:1~7). 그런데 이번의 웃음은 과거의 웃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차가운 웃음이 아닌 ‘따뜻한 웃음’이었습니다. 더 이상 혼자 쓸쓸히 웃는 웃음이 아닌 ‘함께’웃는 웃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도 웃는다는 뜻으로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사실 사라가 이렇게 환한 웃음, 감동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25년을 기다려서 얻은 아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라가 다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을 이루어주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2:1, 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웃을 수 있었습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6절). 분명합니다. 사라의 두 번째 웃음은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신 웃음입니다. 18장 12절 사라의 첫 웃음은 스스로 웃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사가 쓰였습니다. “사라가 웃었다.” 그러나 21장 6절에 등장하는 사라의 두 번째 웃음은 사역동사가 쓰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만드셨다.” 우리는 깨닫습니다. 진짜 기쁜 웃음은, 진짜 축복의 웃음은, 내가 스스로 웃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약속을 이루어주심으로, 나를 웃게 하실 때 나오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웃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지치고, 육체는 시들고, 상처만 남아 냉소적 웃음을 지었던 사라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셨습니다. 약속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진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라를 찾아오셨던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1년 후, 10년 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붙잡으십시오.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그 약속에 차가운 냉소가 아니라, 뜨거운 아멘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어느 순간 하나님이 만들어내시는 환한 웃음이 우리의 얼굴에도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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