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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 1:16~17)문홍선 목사(덕소교회)

하나님 ‘의’ 되신 예수만 사랑합시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예수 복음만이 우리의 소망되어야

 

▲ 문홍선 목사(덕소교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우리는 주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입니다. 구원이 은혜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격도 나에게는 없습니다. 행한 것 없이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았기에 구원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어 성도가 되었어도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잊어버리면 자신의 의를 내세웁니다. 은혜가 사라지면 타락한 인간에게 다시 행위가 되살아납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타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합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은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 아주 단호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타락하여 선을 행하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으며, 다 치우쳐서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적 타락은 모든 부분이 오염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물병에 맹독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과 같습니다. 맹독이 들어간 물병의 물은 어느 부분 할 것 없이 다 오염되어 독물이 된 것과 같습니다. 윗물과 아랫물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는 의로울 수 있고 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는 모든 부분에서 다 죄로 오염이 되어 악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자신의 죄가 어머니 때문이라고 한탄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뼛속까지 타락한 죄인인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죄인이 왕의 옷을 입고 있다고 죄가 가려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비교적 선한 일을 행한다고 선인이 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죄는 그냥 있는 법이 없습니다. 죄의 씨앗이 들어와서 우리 가운데 역사를 합니다. 로마서 1장 29절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인간은 긍정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로는 안 됩니다. 부패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 안에서 악하고 더러운 죄악만 나옵니다. 이런 인간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마음을 고쳐먹어도, 죄를 씻기 위해서 고행을 해도, 인간의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선행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마치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화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 기술이 아무리 좋고, 화장품이 고급이어도 보이지 않으면 입술도 비뚤, 눈썹도 비뚤하게 그리고 말 것입니다. 빛 아래서 보면 다 엉망이 된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행이 이와 같습니다.

내 생각에 의로워 보여도 그것이 의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삐뚤어진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인은 하나님에 영광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종교의 모습입니다. 내가 착하게 살고, 선을 베풀고, 죄를 지으면 수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여깁니다. 티베트의 불교 수행은 대단합니다. 온 몸에 고무를 둘러 감고 몇 달을 길바닥에서 수행을 합니다. 온몸이 다 으스러질 정도로 절을 합니다. 이렇게 수행을 한다고 죄가 사해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행을 해도 아무리 선을 베풀어도 인간의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이 결론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안 되어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고, 그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는 은혜의 방식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죄 없으신 성자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율법을 만드신 창조주가 우리를 대신하여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복음에는 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의가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수동적인 의임을 발견했습니다. 능동적이라는 의미는 내가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루터는 실로 자신의 힘으로 의를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성베드로성당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참회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의는 내가 이루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예수께서 이루신 수동적인 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려는 시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붙잡게 되었습니다. 실로 루터에게 복음의 광명이 비추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복음의 광명이 비춰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나서려는 시도를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만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뭘 해도 선하지 못합니다. 그 의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방법이 있었다면 성자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시고 그저 믿는 자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어 무엇을 자꾸 하려 하지 말고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십시오. 소망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역을 환영하십시오. 우리는 오직 은혜로 된 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는 것 없이 자신의 의로 신앙생활 하려는 소위 의로운 사람들로 교회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을 이제 막 보냈습니다. 종교개혁 주간에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자신부터 개혁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지극히 옳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부터의 개혁이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 자기 행위의 개혁으로 이야기 된 것이라면 종교개혁 정신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정신은 오직 은혜로만 된 것이지 다시 행위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핵심이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인간은 타락해 소망이 없어서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방법, 즉 복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 복음만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찬송가 310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찬송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다 치우쳐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을 왜 사랑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요? 복음은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누구라도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피가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피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 우편에 흉악한 강도도, 간음하여 현장에서 잡힌 음란한 여인도, 삭개오와 같이 돈을 좋아하는 세상사람 세리도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오직 은혜로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은혜로 시작되었으니 행함도 은혜에서 나와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으니 그 은혜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섬김을 받았으니 이 땅에서 섬기는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의되신 예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김병국 기자  bkkim@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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