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나는 누구인가(롬 7:14~25)
[이 주일의 설교] 나는 누구인가(롬 7:14~25)
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17.08.17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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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통해 ‘소망의 나’를 발견합니다
갈등하며 곤고한 미완의 존재이지만 소망의 근거는 그리스도

▲ 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대학 시절 수강했던 철학과목 수업 중 교수님이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내가 누구지?’라고 자문을 해보니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열심히 과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에고(ego)’와 ‘슈퍼에고(super-ego)’, 그리고 ‘이드(id)’입니다. ‘에고’는 자아의 개념입니다. 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슈퍼에고’는 남과 나를 규정하는 규칙입니다. 슈퍼에고가 클수록 체면을 차립니다. 마지막이 ‘이드’입니다. 인간 안에 들끓어 오르는 ‘그 무엇’입니다. 이것이 바로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갈등하는 나

15절에서 바울은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고 합니다. 내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나’라고 합니다.

18절에서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니까? 내 안에 거하는 죄의 문제는 바로 나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 자아는 선함을 원합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발견하는 나는 ‘갈등하는 나’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두 개의 ‘나’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선을 행하고 싶은 나’와 ‘악을 행하는 나’입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내가 서로 싸웁니다. 다시 말해 갈등합니다. 그렇다면 갈등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괴리’ 때문입니다.

19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바로 이것이 나의 실존입니다. 나의 한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내 속에 있는 죄라고 합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20절). 22~23절에서도 그 사실을 반복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여기 ‘속 사람’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한 다른 법’이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어떤 강력한 법’입니다. 지배적 권위를 가지는 원칙 혹은 법을 말합니다. 이 두 법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문제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왜 이렇게 자신 안에 있는 두 자아의 갈등을 지리할 정도로 반복하고 있을까요?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갈등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갈등이 없어요. 무엇보다 신자가 갈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 갈등은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경험하는 영적 투쟁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죄를 자각한 그리스도인이지만 영적 갈등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갈등하는 나가 바로 진짜 ‘나’입니다.

곤고한 나

바울은 이어서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합니다. 아마 로마서에서 가장 익숙하고 유명한 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표현이야말로 인간실존을 가장 잘 나타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나’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여기 ‘곤고한’은 ‘피곤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곤고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비참함입니다. 이것은 가련한 고뇌의 표출입니다. 사망의 몸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 속박 당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인간의 처지를 말합니다. 어쩌면 가장 정직한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넘어집니다.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실족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정말 깨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에요. 그러기에 겸손해야 합니다. 저는 바울의 진실성을 보게 됩니다. 정직성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파산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곤고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죽기 며칠 전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 줄이 될 문장을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지다. 이것은 사실이다.” 루터의 위대함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왜 이 고백이 중요할까요? 이 고백이 있어야 은혜가 임합니다. 곤고한 자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때 새로운 국면이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소망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소망의 나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5절에서 갑자기 반전이 됩니다. 25절은 24절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누가 건져낼 수 있나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5절 이하는 접속사 ‘아라 운’으로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15~24절의 요약입니다. ‘나는 이미 의롭게 되었지만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행형(ing)입니다. ‘공사(工事) 중’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인간 실존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대로가 내 모습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뭔가요? 성령입니다. 결국 8장 1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곤고한 나지만, 복음은 우리로 절망에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소망의 나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저는 로마서 5장 5절이 저는 좋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나는 누구인가? ‘소망의 나’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볼 때는 비참한 자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망의 몸, 전혀 소망이 없는 자신을 건져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또한 죽어 썩어질 몸이 종말에 영원히 썩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된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25절의 이 말씀이 저의 가슴을 감격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소망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패배를 넘어서는 승리의 근거를 말합니다. 소망의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결국 사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구원해준 이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진정한 소망이 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인가? ‘소망의 나’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이미 중생했지만 아직도 성화의 과정 가운데 있는 미완의 존재입니다. 그 가운데 ‘내가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면 결론은 ‘갈등하는 나’입니다. 또한 ‘곤고한 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주님을 통해 나를 보니 나에게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망의 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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