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다(롬 6:1~11)
[이 주일의 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다(롬 6:1~11)
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 김병국 기자
  • 승인 2017.08.1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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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게 된 성도는 예수와 함께 합니다
이신칭의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은 참된 제자가 되어야

▲ 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8)

스캇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자신의 책 첫 머리에서 ‘인생은 고해(苦海)다’라고 썼습니다. 왜 인생은 고해일까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결국 죄가 문제입니다. 바울은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롬 5:12). 그러나 다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로마서 5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은혜가 다스리는 인생에 관해 말씀했습니다. 5장까지의 주제가 ‘이신칭의’입니다. 6장부터는 새로운 주제가 시작되는데, 바로 ‘성화’입니다.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세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당시 로마 교회 안에 은혜로 의롭게 된 사실을 오해하는 분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아! 내가 은혜로 의롭게 되었으니까 이제 내 마음대로 살고 죄를 지으면서 자유롭게 살자’라고 했습니다.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에 대해 죽은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점점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죄와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이제 죄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 근거가 3절에 나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와 함께 죽었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죄에 대해 죽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세례는 죄 씻음이고,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표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를 누구누구와 함께 하는 차원 정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이란 의미로 사용을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병행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리스도와 함께’를 병행해서 사용했을까요? 바울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와 함께는 우리가 생각하는 누구와 함께 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을 같이 보낸다거나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목장에서 목원들이 함께 한다고 할 때는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삶을 나누거나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습니다

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죄의 몸이 죽었으므로 더 이상 몸의 사욕을 좇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은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8절부터 10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에 합하여 우리도 함께 부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는 십자가가 중심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어요. 반쪽짜리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바울이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성도는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전체에서 매주 중요한 주제이자, 오늘 본문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신칭의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신칭의로 의롭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게 대하여 살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거룩한가요? 흠이 없나요? 실상은 죄로 인해 넘어집니다. 같은 죄를 또 짓습니다. 절망합니다. 낙심합니다.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부활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나요? 마음이 슬프고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이처럼 이신칭의로 의롭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게 대하여 살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갖고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하나요? 11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가 사실은 의인이 아니고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인 은혜로 의로 여겨졌습니다. 인간이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은혜를 주신 것이야 말로 복중에 복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복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신칭의가 최고의 복임을 강조합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비록 내가 비록 의롭게 되었고 주님과 동행하려고 하지만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다’를 외쳐야 되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자꾸 우리를 정죄합니다.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내 존재는 예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영성입니다. 종교개혁의 영성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연합은 ‘생명의 연합’입니다. 붙어있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예수님은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로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과 우리와의 연합은 도저히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생명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성화의 시작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신칭의로 의롭게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는 스승과 운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혹시 죄를 짓거나 실족하여 넘어질 때에도 다시 일어나야합니다. ‘나는 죄에 대해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가 되었다’를 선포하고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은 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참된 제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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