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사명을 위한 부르심 (출 4:1~4)
[이 주일의 설교] 사명을 위한 부르심 (출 4:1~4)
  • 김병국
  • 승인 2019.10.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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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서 목사(세곡교회)

하나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명자 자리로 돌아갑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 4:4)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박의서 목사(세곡교회)

소명은 하나님이 명하신 사명을 향하여 걸어가라는 부름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면서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아니하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출 3:1~10)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모세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모세의 마음에 남아 있던 상처였습니다. 그 상처는 모세 스스로도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커서 하나님이 친히 풀어주셔야만 할 문제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모세의 마음을 치유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담대하게 바로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모세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어서는 계기가 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의 극복과제

모세는 어린 시절을 요게벳의 신앙교육과 함께 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그의 자손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언약을 믿고 살아온 믿음의 사람들의 후손이었습니다. 레위 가족 중 한명이었던 아므람이 레위여자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나은 아들이 모세였습니다. 믿음으로 장성한 모세는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습니다.(히 11:24~25) 그리스도(메시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것은 상 주시는 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40세의 모세가 한 행동을 믿음의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습니다. 살인자로 전락했고, 미디안으로 피신하였으며, 초야에 묻혀서 40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미디안에서 보낸 40년의 세월이 긴 시간이었지만 40년 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정돈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유일한 모세의 시는 90편입니다. 거기서 모세의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모세는 그때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인생을 정돈하고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스스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던 그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명이 사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모세가 극복해야 할 극복과제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마음속에 있는 큰 상처였습니다. 미디안에서 보낸 오랜 세월 동안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한 상처로 남아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려던 모세였습니다. 믿음으로 뭔가를 해보려다가 그 일을 이루지 못하여 받은 상처였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모세의 마음에 큰 부담은 애굽 왕 바로였습니다. 모세가 극복해야할 가장 큰 문제는 바로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상처도, 극복하지 못한 마음의 문제도 바로였습니다. 40년 애굽 왕궁에서 제왕수업을 받으며 살았기에 바로가 어떤 자이며 그 지위와 권세와 위엄이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 상처를 극복해야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하게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극복해야할 상처는 바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80세의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는 모세에게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모세는 자기 손에 있는 것이 지팡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하셨고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뱀 앞에서 피했습니다. 뱀이 모세를 향하여 달려들었거나, 아니면 뱀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이 뱀은 코브라와 같은 뱀이었을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는 왕권의 상징으로 왕관 앞에 금속으로 만든 코브라 모양의 뱀을 장식품으로 붙이고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왕관을 쓴 바로와 왕관에 붙어있던 코브라 모양의 금속조각을 수없이 보았던 사람이 모세입니다. 바로와 그의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는 분리시킬 수 없는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가 바로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팡이가 코브라가 되게 하시고, 다시 꼬리를 잡았더니 코브라가 모세의 손에 잡힌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순간입니다. “네가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바로, 네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어서 부르신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도 움직이지 못하게 할 만큼 큰 상처로 남아있는 그 바로를 네 손에 붙인다.”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시더니 이번에는 바로를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모세에게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 코브라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고, 그것을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가 극복하지 못했던 그 바로를 모세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사용하던 그 지팡이였습니다. 맹수나 이리가 양떼를 공격할 때 그 지팡이로 양들을 보호하고 원수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양을 치던 때에 모세가 사용했던 그 지팡이는 다른 용도로 사용됩니다. 미디안에서는 양들을 치는 일에 사용하였지만 이후로는 그 지팡이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인 바로와 애굽을 징치하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심과 동시에,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걸어가며 부르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소명을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향하여 나아가야함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문제를 피하지 말라

하나님이 모세의 마음을 살피고 계셨기 때문에 지팡이로 기적을 일으켜 모세의 상처를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3절에 기록된 구절 중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자기를 향하여 덤벼드는 뱀이 무서워서 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마음에 있었던 상처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것을 만져주시려고 취하신 조치였습니다.

40년 전 모세는 애굽의 건축 감독관이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지만 그 일이 탄로된 후 바로가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았을 때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40년 전 바로의 낯을 피하는 것과 바로를 상징하는 코브라를 피하는 모세의 모습이 병행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그 뱀을 피해도 뱀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꼬리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잡았을 때 그 뱀은 더 이상 그를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의 손에 들어온 지팡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시는 메시지도 분명했던 것입니다. “네가 무서워하는 그 바로, 네가 피하는 그 바로를 언제까지 피해 다닐 거냐? 이제 내가 그 바로를 네 손에 붙였으니 그 지팡이를 들고 바로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피하는 곳에는 답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것을 잡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내 손에 도구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것을 믿으며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소명’이라는 단어와 ‘사명’이라는 단어는 의미상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명이라는 단어와 구분될 수 없습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소명을 받은 자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크고 작은 상처나, 이런 저런 일들로 발목이 잡혀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상처에서 벗어나 사명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목회현장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로 지치고 낙심되어 열정을 상실하고 있다면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야합니다. 돈에 눈이 멀면 사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명예에 눈이 멀어도 그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소명을 받은 내가 극복해야 할 극복과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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