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목사(태평교회)

내게 주어진 자리와 달란트는 최선임을 깨달읍시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마 25:25)

김성호 목사(태평교회)
김성호 목사(태평교회)

마태복음 후반부의 마지막 다섯 번째 예수님의 설교는 ‘감람산 강화’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사실 23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루살렘성전은 파멸되고, 그것이 주님의 재림 시까지 계속되리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성전 건물의 화려한 영광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4장에서 예수님은 23장에서 선포한 말씀의 의미를 직설적으로 설명하십니다.(마 24:2)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이 종말을 대비하는 자세를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교훈하셨습니다. 먼저는 ‘10처녀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중심 교훈은 40절과 45절입니다. 이 비유들 중에서 가운데 있는 달란트 비유를 살피려고 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나오는 중심인물은 누구일까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면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대화가 긴 사람이 예수님의 교훈의 중심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를 해서 배나 남겨서 주인의 칭찬을 듣습니다. 문제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고대에 보물을 간수하는 방법대로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감췄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왔을 때 결산을 하게 됩니다. 그때 그가 한 말을 중심으로, ‘항변(抗辯)’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누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일까요?

이 비유를 보면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에게 하는 말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과연 주님은 누구에게 이 교훈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는 본문에 보는 대로 오히려 주인에게 항의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을 향해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엄하고 잔인하고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항변합니다. “왜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를 주면서 나에게만 당신은 너무나 잔인하게 달랑 한 달란트를 주는 것입니까?”라는 항변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항변은 더 적극적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농사짓는 예를 듭니다. 누가 나가서 일합니까? 어차피 종들이 나가서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인은 자신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타작을 합니까? 종들이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헤쳐서 모으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헤치지 않은 데서 거두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일은 내가 해야 할 몫이고, 주인은 하지 않을 것이면서 왜 나에게만은 풍족하게 일하고, 마음대로 한번 꿈을 펼쳐보도록 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입니다. 내가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오로지 주인이 잘못한 탓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즉 주인은 다섯 달란트 준 사람과 두 달란트 준 사람에게는 후하고 자비로운 주인일 지 모르지만, 나에게만은 두려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손해를 입혔다가는 엄하게 징벌할 것이 두려워서 달란트를 감추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의 모습과 같습니까? 사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볼 때에는 왜 나에게는 한 달란트만 주었느냐고 원망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에는 “정말 부럽습니다. 당신은 다섯 달란트나 받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자고 공부해서 겨우 큰 회사에 입사해 말단 사원에서 이사까지 승진하는데 수많은 세월이 걸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동기가 그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전임 회장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훨씬 공부도 못하고 매일 연애나 하고 돌아다니고, 어느 날 돈 있다고 유학을 간다고 했습니다. 아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외국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놀러 다니다가 돌아와서는 갑자기 자기 회사의 회장이 된 것입니다. 자기는 그것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하여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생각하더라는 말입니다. 사실 본문에 나오는 항변하는 그 사람은 우리 각자가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항변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요?

문제는 이 항변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마지막 계산하는 날의 일이면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돌이킬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미리 알고 그 날을 바로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항변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내게 가장 최선의 자리임을 인정합시다.

달란트 비유의 맨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14, 15절) 맡기셨습니다. 오늘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내게 가장 최선의 자리이기에 나를 그곳에 세워 놓으셨음을 인정합시다. 종종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시해서 안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능력이 안 돼 못한다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평생에 아무 일도 못할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리는 주인은 각각의 그 재능대로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세워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리를 시시하다고 원망하지 맙시다.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최선의 자리임을 고백하고 최선을 다합시다.

둘째,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읍시다.

종종 주일학교에서 달란트 잔치를 연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 위해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달란트를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내용은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소한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현대 영어에서 ‘talent’라는 말이 ‘재주, 재능’을 가리킵니다만,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는 금과 은의 단위인 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그 가치는 6000데나리온으로, 무려 노동자 2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엄청난 가치입니다.

왜 나에게만 주인은 인색하냐고 항변하지 맙시다. 무려 2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떡을 더 크게 보지 말고, 내게 이런 엄청난 것을 주셨음을 깨달읍시다. 우리 모두 내가 받은 이 ‘한 달란트’로 보이는 것이 내가 하찮게 여겨도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러한 인물을 키우지 못한다하더라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만하지 말고 내게 맡겨진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기억합시다. 한 달란트는 엄청난 양입니다. 왜 작냐고 말하지 말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실족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바로 하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내게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지 맙시다.

항변하는 종에게 주인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26,27절) 사실 신명기 23장 20절에 의하면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한 달란트라 항변하는 종에게 취리하는 자들의 도움이라도 받지 그랬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즉 능력이 부족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양인 한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옆에 도와줄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귀한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고, 귀한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주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롬 8:35~39; 요16:13)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고리대금업자가 우리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인도가 늘 함께 합니다.

다시 힘을 냅시다. 항변하는 자리에서 이제 다시 일어납시다. 바로 지금 내가 처한 그 상황이 사실은 최선의 자리입니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항변하였을 뿐이지 우리는 결코 무능한 자도 아니고, 주인은 나에게만 인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게 꼭 알맞은 자리에 나를 세우셨음을 고백합시다. 내가 받은 이 ‘한 달란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것임을 고백합시다. 난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내가 매일 좌절하지 않도록 붙여주신 그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바라봅시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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