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광야 길(민 9:15~23)
[이 주일의 설교] 광야 길(민 9:15~23)
  • 김병국
  • 승인 2020.01.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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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식 목사(목동영성교회)

광야 길은 하나님 임재 보여주는 순종 훈련처입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민 9:23)

최효식 목사(목동영성교회)
최효식 목사(목동영성교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불러내어 광야 길을 가게 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지나간 자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자기 계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광야 길을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인도하고 있는 그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출애굽의 역사, 광야 길의 역사는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는 여전히 살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그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광야 길은 신약시대로 말하면 광야교회입니다. 광야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아직도 조금의 불편함 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불만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아직도 그 정신이 애굽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또, 광야는 외부의 적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 광야 길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실히 보여주는 곳입니다

본문 15~16절을 보면,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라고 합니다.

성막을 만들어 봉헌하는 일이 출애굽기 39장과 40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의 기록이 성막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성막 봉헌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고 있다면, 민수기의 기록은 그 성막이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지금 자신들이 왜 광야 길을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민 9:1, 2)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목숨과 연관됩니다. 애굽에서 경험한 유월절은 가정마다 장자의 생명을 앗아간 두려움의 날입니다. 적들에게는 슬픔과 애통과 고통의 날이지만, 반대로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을 보전한 은혜의 날입니다. 그러기에 이 유월절은 애굽과 공유할 수 있는 절기가 아닙니다. 오직 이스라엘만 지킬 수 있는 기쁨과 감사의 절기요, 제사입니다.

일단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이 절기를 지키게 하였으니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불평이 생깁니다. 광야에서는 농사를 할 수 없습니다. 목축도 불가능합니다. 일단 먹을 것이 없습니다. 피난 나올 때 가져온 식량으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습니다. 배고픔과 굶주림의 불평은 본능 중에서도 가장 간절한 불평입니다. 이들의 앞길은 참으로 막막한 일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두 달 보름만에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는 이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그날의 식량을 주신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주신다는 뜻은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굶어 죽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되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가 있는 성막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광야 길에서 성막은 단순한 천막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함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법궤와 함께 계신 하나님, 성막에 머무르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곳입니다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길은 신약 교회의 모형입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불러내셨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것처럼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신 것이 바로 ‘교회’,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무리들’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광야의 길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걸어가는 백성들입니다.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불러내 주셔서 영적인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광야의 삶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18절에서 23절까지 반복해서 나오는 문장이 있는데 바로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입니다. 이 문장이 무려 8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라는 의미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 가혹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몇 주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의 가나안을 지천에 두고 하나님은 계속 머무르기만 합니다. 그러다 움직이는데, 이번에도 가나안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이동합니다.

기록을 보면 38년 동안 무려 41번 진을 옮깁니다. 그 사이에 늙은이들은 죽고, 몸이 약한 이들도 병들어 죽습니다. 애굽처럼 물자가 풍성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 진을 옮긴 것입니다. 이 모습을 22절에서 묘사합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순전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200만명입니다. 이들이 광야에서 이동하는데 그 말씀대로 따라가더라는 것입니다. 200만명이 진치고 있다가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광야교회는 마치 이스라엘의 광야 길처럼 편안한 요소보다 위험한 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때 광야를 지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 생각대로 하면 길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주의 말씀을 따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지는 줄로 믿고 그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답입니다.

요즘은 선생들도 많고, 지도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옳습니다. 우리는 변치 않는 말씀만 의지해 가야 합니다. 말씀을 나침반 삼고, 말씀을 깃발 삼고 가야 합니다.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개혁교회 성도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셋째, 광야 길은 직임대로 순종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본문 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23절에서도 “명령을 따라”라는 구절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광야 길에서 명령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반영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광야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길일 수 있습니다. 내게는 거스르는 시기나 방법이라 하더라도 내 생각을 꺾고 순종하는 길이 광야에서 이기는 길입니다.

결국, 이 광야의 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는 것이 구약을 관통하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본디 하나님과 어긋나게 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말씀을 주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 직임은 민수기 7장 7~9절에서 게르손, 므라리, 고핫의 자손들에게 준 직임들입니다. 성막에서 할 일들을 분업하여 맡겨주신 것들입니다. 각자에게 부여된 이 직임들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의 명대로 그 직임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7장 9~10절에서는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이 시대에 한국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도 주어진 직임이 있습니다. 각각 부르시고 맡기진 달란트에 따라 그 직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 직임을 다하는 일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욱 새롭게 하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직임을 다하는 충성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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