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단 한 번의 만남(눅 23:39~43)
[이 주일의 설교] 단 한 번의 만남(눅 23:39~43)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20.02.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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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43)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

두 강도 사이에서 죽으신 예수님

아무리 못난 자식도 죽을 때만큼은 배려해 주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일반 백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 옆에 두 명의 강도를 끼고, 마치 강도들의 우두머리처럼 죽게 하실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저주받은 것이고, 어차피 인류를 구원할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예수님이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평생 순종하셨던 아들에게 너무나 혹독하고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요?

행악자(行惡者)들

여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들이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정치범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일삼는 폭력적인 강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누가만 그들을 ‘강도’가 아닌 특별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행악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33절) 여기에서 행악자란 악을 행한 사람, 곧 악인이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누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바로 ‘죄인들’ 사이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 옆에 두 명의 죄인을 두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죄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항상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그리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셨습니다. 죄인 중의 하나처럼 모진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 옆에 죄인들을 끼고 죄인들과 함께 죽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면, 교회의 모든 관심과 마음은 언제나 죄인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죄인 때문에 오셨고, 죄인과 함께 사셨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라면 교회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의 능력과 영광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자꾸만 교회의 관심이 죄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교회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심과 열정이 죄 가운데 죽어가는 ‘행악자’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보낸 여섯 시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단지 죄인들에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두 명의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죄인들과 함께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죄인들 사이에서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망의 끝에 있는 그들을 만나시고자 죄인들 사이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들은 불쌍한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실패자들이었습니다. 불공평한 세상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만남도 그들을 죄로부터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십자가 앞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섯 시간이나 예수님을 강도들 곁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두 강도들처럼 오랜 시간을, 그것도 바로 곁에서 함께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천하고,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투자가치가 없는 사형수들에게 예수님의 남은 모든 시간을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런 죄인들에게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면, 오늘 우리는 그 어떤 죄인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잃어버린 자녀들과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붙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두 강도 중에 한 강도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몇 시간 전만해도 예수님을 욕했던 사람이었습니다.(마 27:44) 저주로 끝날 인생이었습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곁에 예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의 회개는 예수님을 욕하는 자기 동료를 꾸짖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40절) 그리고 그의 믿음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42)라는 간구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가장 비극적인 인생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인생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그는 영원히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43절)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열 두 해를 유출병으로 고생했던 한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그의 옷깃 한 번 만지고 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거라사 지역의 광인은 예수님을 만나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만나 죽었던 딸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가 사람 낚는 어부로 변화되고, 심지어 교회를 핍박했던 사울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후 이방인을 전도하는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다시 사는 것입니다. 죽었던 간증이 살아납니다. 오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교회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교회가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더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남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우리 주변의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죄인을 만나기 원하시는 생명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해 세 가지 중요한 기도를 소개하고 함께 기도하고자 합니다.

1. 주여, 오늘 내가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게 하소서.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것을 막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직분자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은총에 힘입어 거룩의 능력을 회복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은 날마다 거룩한 신부로 자신을 드리고 있습니까?

2. 주여! 오늘 내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소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무엇보다도 나 자신부터 하나님과의 만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오래 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끊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도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어제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생생한 만남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 나타나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야 세상도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무엇을 노력하고 있습니까?

3. 주여!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하나님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완전히 사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죄인도, 그 어떤 불신자도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잠시 만나고, 심방하고, 상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이 전해지는 도구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사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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