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십자가, 웃게 하시는 능력(눅 7:36~50)
[이 주일의 설교] 십자가, 웃게 하시는 능력(눅 7:36~50)
  • 기독신문
  • 승인 2020.03.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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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찬 목사(대구동산교회)

예수 안에서 놀라운 대역전의 웃음과 감격을 누리세요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7:50)

 

박영찬 목사(대구동산교회)
박영찬 목사(대구동산교회)

쓰레기더미에 핀 장미꽃

<랜드필 하모니(Landfill Harmonic)>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입니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의 명성을 가진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수준 높은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화려한 연주경력을 가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의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에는 제도권 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한 단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악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도 없습니다. 사실 그들은 자신의 악기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는 동네는 남미 파라과이의 쓰레기 매립지에 위치한 빈민촌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1500톤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매립지에 사는 학생들의 부모들은 악취와 먼지가 진동하는 쓰레기더미를 뒤지다가 쓸 만한 물건이 나오면 팔아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거나, 장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같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 ‘파비오 차베스’라는 시간제 음악 강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하여 작은 음악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기름통으로 첼로를 만들고, 작은 캔을 모아서 플루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샐러드 그릇과 포크로 바이올린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 음악선생에게는 절망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눈과 귀 때문에 아이들의 절망이 소망으로,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대역전입니까?

 

여인의 눈물

누가복음 7장 36절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근사한 식사자리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놀랍게도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시몬이 한창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돌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초대를 한 적도 없는 한 여자가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라는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식사 자리에 불쑥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모두들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37절에 보면, 그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 할 정도로 ‘죄를 지은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죄를 지은 여자’란 일반적으로 매춘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바리새인이 식사하는 자리에 감히 매춘부가 뛰어 들어왔으니 그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늘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무례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38절에 보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자의 눈물이 한 방울씩 예수님의 발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어느새 예수님의 발은 그녀의 눈물로 흥건히 젖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푼 다음에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당시에 여자들은 밖에 나갈 때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나갔습니다. 만약에 자기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위하여 머리를 풀었을 때에는 이혼사유가 될 정도로 수치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시몬과 주위 사람들의 눈빛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시지요? 주제 파악을 못한 채 무례하게 행동한 그녀를 하나같이 혐오와 경멸과 분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저 더러운 여자를 당장 끌어내라”고 소리칠 것만 같습니다. 특히 시몬은 여자의 행동을 허용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 분은 참 선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인의 큰 사랑

그때 예수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무례하게 행동한 더러운 여자가 아니라 도리어 시몬을 향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정말 무례하게 행동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시몬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손님을 집으로 초대를 하면, 주인은 그 손님을 위하여 세 가지 친절을 베푸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첫 번째는 환영의 표시로 손님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모래먼지로 더럽혀진 손님의 발을 종으로 하여금 씻겨 드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특별한 환대의 표시로 최고급 향유를 머리에 부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손님접대의 예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워낙 경황이 없어서 깜빡했기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그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는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47절) 결국 그녀가 물 대신에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리고, 수건 대신에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리고, 비싼 향유를 부어드린 이유는 바로 자신의 많은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가난한 심령

그렇다면 똑같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시몬의 사랑과 그녀의 사랑이 차이가 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를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팔복 가운데 첫 번째 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심령이 파산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 꽤나 괜찮은 존재가 아니라, 깨어진 질그릇처럼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마치 불에 타버린 재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음이 높고 교만한 자의 주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자의 주님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파산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피 묻은 손으로 맞아주시고 안아주십니다. 어루만져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그래서 웃게 하십니다.

 

여인의 웃음

예수님께 왔던 여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48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50절)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소망이나 기쁨이 없는 인생이었지만,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반면 시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어릴 적부터 구약의 성경을 줄줄 외웠고, 특히 메시아에 대한 예언구절은 300개 이상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하였지만,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분이 메시아인 줄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전에 서서 따로 기도하던 바리새인처럼 자기 공로와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그릇과 같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빈민촌 아이들이나, 찌그러진 기름통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가의 손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멋진 연주가와 악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심령, 파산된 심령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절망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대역전의 웃음과 감격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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