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철 목사(대구 대흥교회)

하나님을 대면하고 기도하면 위기는 축복이 됩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

▲ 정명철 목사(대구 대흥교회)

저는 어린 시절 낙동강 지류인 위수강변에서 자랐습니다. 강에서 조개 줍고 물고기 잡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렸기에 잘 잡지는 못했지만 삼촌들에게서 물고기를 어떻게 잡는지 배웠습니다. 피라미가 떼를 지어 가고 있으면 그 중에서 가장 큰 놈을 점찍습니다. 막대기 하나를 들고 몰면서 고기가 지칠 때까지 계속해서 따라갑니다. 그러면 고기가 포기를 하고 뒤집어집니다. 그때 고기를 낚아챕니다.

사람은 죽이려고 물고기를 몰아가지만 하나님은 살리시려고 피라미처럼 나를 몰아가십니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까지 몰아가십니다. 그제야 정직하게 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돌아보니 그렇게 하나님의 몰아가심의 고통 속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기도는 저에게 고통 속에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위태로울 爲(위)’, ‘기회 機(기)’라는 의미의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새로운 길로 만들어간 야곱은 인생의 위기를 기회(chance)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전(challenge)하고, 놀라운 변화(change)의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삶을 만들어 봅시다.

1.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chance)

야곱은 처음에는 정직하게 자기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그대로 인간의 모든 꾀를 다 내었습니다. 재산을 두 떼로 나누어, 한 떼를 치면 한 떼는 피하고자 했습니다. 분노로 가득한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선물 공세도 하였습니다. 암염소, 숫염소, 암양, 수양, 약대, 암소, 수소, 암나귀 등 귀한 짐승들을 미리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아내와 여종과 열한 아들을 얍복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야곱은 약복 나루터에 홀로 남았습니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할 그 때에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을 대면하였습니다. 고통의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고통은 우리에게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2. 하나님을 향하여 강력하게 도전해야 합니다(challenge)

야곱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겠다는 강력한 도전정신으로 밤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에게 매달렸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나로 가게 하라”고 하였지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고 매달렸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쟁취할 때까지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이것은 발버둥이 아닌 매달림이었습니다. 발버둥은 아직 내가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남아 있는 것이라면, 매달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뒤로 물러서거나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불타는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결연한 신앙으로 강력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걸고 기도로 영적인 씨름을 하면서 축복을 쟁취할 때까지 도전해 가야 합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40년을 목회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된지도 벌써 25년이 넘었습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7년 동안 신학교에 다니면서 한 한기를 제외하고 등록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고통을 당해보았습니다. 공간이 없어서 15년간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부교역자에서 담임목사가 된 이후에는 성도들이 권위를 인정하기 않았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서 구역예배를 3년 동안 중단하게 할 정도로 관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수없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와 철야기도, 강단기도를 했습니다. 교회와 나 자신의 삶이 가장 어려웠을 때에는 40일 동안 교회를 떠나지 않고 목회하며 설교하며 금식기도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장이 멈춰 죽음의 문턱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매일 3시간씩 기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도들도 함께 ‘오로지 기도’라는 이름으로, 3년 동안 새벽기도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자주 고백하고 선포하는 말이 있습니다. “비전만큼 살고 기도만큼 성취합니다.” “When we work we work, When we pray he works.(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고통은 우리에게 기도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도움을 강력하게 간구하며 걸어왔습니다.

3. 변화의 축복을 경험해야 합니다(change)

야곱은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한 마디로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진짜 야곱처럼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첫째, 야곱은 철저하게 깨어지는 변화의 축복을 받았습니다.(25, 31)

주의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 어긋나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야곱이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더이상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항복하고 깨어진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과 사역에 깨어진 거룩한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깨어지면 거룩한 여유와 배짱이 생겨서 기쁜 마음으로 양보하고 져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는 성도들에게 져 줌으로 이기는 삶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양보하고 져 줌으로 사람을 얻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화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 야곱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변화의 축복을 받았습니다.(27~29)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사기꾼’,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 이름이 변하여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복된 이름입니까? 지금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복되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 깨어진 야곱은 새롭게 이스라엘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속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나를 달아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표시가 있습니다.

셋째, 야곱은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변화의 축복을 받았습니다.(33:4, 12)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형 에서가 그렇게 두렵고 떨렸는데,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더니 하나님이 그 어려운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400명의 군사를 끌고 온 형 에서가 야곱과 안고 입 맞추고 울었습니다. 극적인 상봉입니다. 죽이겠다고 달려온 에서가 이제 야곱과 동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을 만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영적인 것부터 해결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변화가 상식이 되고, 기적이 상식이 됩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변화되어 갔습니다. 변화되니 고통과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후 모두를 축복해 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통과 문제는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려 하지만, 그 곳에서 야곱처럼 하나님을 대면하고 기도로 매어달릴 때 새로운 기회가 됩니다.

얼마 전 부활절을 앞두고 두 주간 특별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전 성도의 80% 이상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60%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함께 기도하며 각자의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좌석이 비좁아 강단에서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올라와 앉아 기도를 했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시간에 기도하면 야곱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기도하면 위기는 축복이 됩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것은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대면해야 합니다.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브니엘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