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시 46:10~11)
[이 주일의 설교]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시 46:10~11)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 김병국
  • 승인 2020.04.21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 되심을 보이실 때까지 가만히 믿음으로 기다립시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시 46:10~11)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침묵의 순간

지금 인류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극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라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여 지난 15일 확진자가 20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사망자는 12만명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수많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면서 이 바이러스가 조속히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성녀로 일컬어지는 마더 테레사가 말했듯이, 침묵의 순간은 하나님께서 고요 속에서 말씀하시는 때입니다. 그럴 때에는 기도가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도 됩니다.

침묵이 때로는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순간입니다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침범하는 행위일 때가 있습니다. 침묵이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적절한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마음 자세를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창함보다 정직함을 찾으십니다. 그것이 큰 재난과 절망감에 휩싸였던 사람 욥이 배운 교훈이었습니다.

욥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다름 아닌 그의 혀에 있었습니다. 욥은 너무 많은 말을 했습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 서로 주고받는 언쟁이 욥기 전체 42장 중 23장에 걸쳐 계속됩니다. 마침내 욥은 더 이상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친구들과의 토론이 끝났습니다. 이제 욥은 토론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여섯 장에 걸쳐 하나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힙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하나님을 설명하고, 하나님을 회고합니다. 심지어 욥이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목을 가다듬기 전에 이미 욥기 42장 중 37장이 할애됐습니다. 38장에 이르러서야 이렇게 시작합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글씨는 다른 글씨보다 훨씬 더 크게 써야 마땅합니다. 이때부터 인간이 말을 멈추고 비로소 하나님이 말씀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입을 막고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하나님이 채 말씀을 꺼내기도 전에 욥은 원통해하는 자신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3~4) 이렇게 시작한 하나님이 말씀은 계속됩니다.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욥 38:16, 22, 39:19) 욥이 고개를 채 젖히기도 전에 다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하늘에 별을 수놓고, 타조의 목을 길게 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 보시기에 간단한 일들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난과 고통에 관해서 말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욥, 너는 아무런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이러한 의도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욥기 40장 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소서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욥은 말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침묵만이 적절한 반응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보다 한 세기 앞서 살았던 독일의 신비 사상가 토마스 아 캠피스에게도 자신의 입을 가려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 다음의 기독교의 고전이 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역작을 남긴 수도사였습니다. 92살이 되기까지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았던 그가 한번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글을 장황하게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그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말이 지푸라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다시는 한 줄도 더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고 합니다. 그런 순간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경외감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경외감을 가지고 우리의 입을 가릴 때입니다.

파도 속에 믿음의 배를 타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경외감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구절은 선포가 아니라 간구입니다. “주님,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정당한 주님의 보좌를 취하시옵소서. 주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저는 잠잠하겠습니다.” 이런 간구입니다. 거룩하신 분은 우리와 다른 차원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그분은 곤혹스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뱃사람들은 폭풍우 속에서 육지를 찾는 비밀을 압니다. 폭풍우를 만난 바다 위에서 육지를 찾으려면 다른 배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파도에 눈길을 고정시켜도 안 됩니다.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해안에 서 있는 등대의 불빛에 시선을 맞추고 그것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는 것은 우리 인생에 불어 닥칠지도 모르는 그 어떤 폭풍우라도 제어할 수 있는 분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처럼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욥처럼 입을 가리고 잠잠히 앉아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고라 자손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이 구절은 약속과 함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입을 가리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믿음의 배는 기다림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릅니다. 일상에 불어 닥친 코로나19의 폭풍우 속에서도 가만히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에서 한숨과 고통을 빨아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를 덮으시게 해야 합니다. 가만히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이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0~11절을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고라 자손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 시의 마지막을 이런 말로 마무리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실 때까지 그분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믿음으로 이 풍랑을 이겨나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런 기도를 드립시다.

“주님, 지금 세계는 코로나19의 충격 속에 빠져 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침묵의 순간은 하나님께서 고요 속에서 말씀하시는 때인 줄 압니다. 이런 때에 조용히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 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유창함보다 정직함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말하기보다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욥처럼 ‘보소서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와 다른 차원에 거하시는 거룩하신 주님, ‘주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정당한 주님의 보좌를 취하시옵소서. 주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저는 잠잠하겠습니다.’ 이렇게 간구하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실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우리의 시선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고정하게 하옵소서.

주님, 고라 자손의 시 시편 46편을 묵상해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실 때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믿음으로 이 풍랑을 이겨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길목 끝에 부활이 있었듯이, 코로나19의 길 끝에 과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십니다’라고 찬송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며, 부활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