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감람나무 새 잎사귀 (창 8:6~12)
[이 주일의 설교] 감람나무 새 잎사귀 (창 8:6~12)
  • 기독신문
  • 승인 2020.04.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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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인 목사(청량교회)

환난 중에 희망의 잎사귀 전하는 비둘기 전령이 됩시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창 8:11)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노아의 방주

사방에 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석양이 물속으로 빠져들어 가며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하얀 구름이 물에 반사됩니다. 노아가 탄 배는 온통 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지난 몇 달 동안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냄새를 맡고, 똑같은 얼굴만 봤습니다. 수많은 짐승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도 이젠 지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배가 뭔가에 ‘쿵’ 하고 부딪쳤습니다. 아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노아가 고개를 끄덕인 뒤 방주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밉니다. 방주의 밑바닥이 땅에 닿아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물 천지였습니다.

노아가 정찰 까마귀를 날려 보냈지만 배 주위를 선회할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한참 만에 돌아온 비둘기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기진맥진한 채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후에 노아는 다시 한 번 시도했습니다. 비둘기를 꺼내 사다리를 오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비둘기가 창공에서 하나의 점으로 변할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노아는 하루 종일 비둘기가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하던 일이 손이 잡히지 않자 노아는 아무 말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창문을 통해 창공을 바라봅니다. 바람결에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흩날립니다. 구릿빛 얼굴 위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쬡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마음을 풀어주진 못합니다. 비둘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려고 밖으로 나왔건만 역시나 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동서남북이 전부 물뿐이었습니다. 온통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람나무 새 잎사귀

어떻습니까? 노아의 심정이 이해되십니까? 필시 여러분도 지금까지 사는 동안 노아와 같은 처지에 빠진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홍수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직, 뜻밖의 사고, 중한 질병, 무능한 남편, 차가운 아내, 말을 듣지 않고 방황하는 자녀, 아무리 둘러보아도 망망대해만 보이고 희망의 끝자락조차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태양과 함께 희망마저도 지는 기분, 노아의 마음은 이런 기분으로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노아는 지금 소망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노아의 기분을 백분 이해하는 여러분에게도 지금 소망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작은 소망 하나가 큰 기적을 일으킵니다. 노아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작은 소망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망이 찾아왔습니다. 창문을 닫고 하루를 마감하려는 찰나, 비둘기 소리가 들립니다. 성경은 이 순간을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고 묘사합니다.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 그 잎사귀는 단순한 잎사귀가 아니라 약속이었습니다. 비둘기는 단순히 나뭇잎 하나를 물고 온 것이 아니라 소망을 물고 온 것입니다. 나뭇잎, 그것도 새 잎사귀 하나는 어딘가에 마른 땅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런 인생의 감람나무 잎사귀를 좋아합니다. 암세포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내가 돈을 좀 융통해 볼테니 힘내서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가 보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젠 퇴원하셔도 됩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곧 나온다더군. 이런 말들이 바로 인생의 감람나무 새 잎사귀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잎사귀를 물어다 준 비둘기를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실연당한 아들을 격려하는 것이 바로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대학에 떨어져 실의에 빠져 있는 딸을 위로해 주는 것, 부부싸움을 하고 울고 있는 새댁을 위로해 주는 것, 진학시험 취직시험에 떨어져 낙심하는 친구를 위로해 주는 것도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좋아할 뿐 아니라 그것을 주는 사람도 좋아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소망의 주님

예수님이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 근처에 서 계십니다. 여인은 수치심과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합니다. 노아의 눈에는 온통 물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 여인의 눈에는 온통 이글거리는 분노밖에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더니 순식간에 주변이 텅 비고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았습니다. 그러자 천국의 비둘기가 여인에게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내밉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이 수치의 홍수로 절망에 빠진 여인에게 소망의 잎사귀를 내미신 것입니다.

주님은 베다니의 마르다에게도 소망의 잎사귀를 내미셨습니다. 오라버니 나사로가 장사 지낸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예수님이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르다는 아쉬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노아가 방주의 창문을 열었던 것처럼 마르다는 자기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비둘기처럼 예수님께서 새 잎사귀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자격으로, 또한 구세주의 자격으로 비둘기처럼 하신 것입니다. 미래의 땅 해변까지 날아가셔서 은혜의 과수원에서 간음한 그 여인을 위해 새 잎사귀 하나를 따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에서는 마르다에게 줄 새 잎사귀 하나를 따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여러분에게 이 두 잎사귀를 내밀고 계십니다. ‘은혜’와 ‘생명’의 잎사귀 말입니다. 죄 용서, 죽음에 대한 승리. 이것이 우리 주님이 주시는 소망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소망의 잎사귀들입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직도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물론이지.” 죽음의 목전에서 아직도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물론이지.” 세상의 모든 노아에게, 한 줌 희망을 찾아 사방을 둘러보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희망이 있어.” 그리고 그분이 비둘기처럼 오십니다. 우리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머나먼 희망의 땅, 우리가 언젠가는 살게 될 본향에서 소망의 잎사귀를 물고 오십니다.

소망의 매개체가 되라

여러분은 주님의 소망의 잎사귀를 받아보셨습니까? 우리에겐 아무리 거대한 문제도 하나님께는 조족지혈과 같고, 창해일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새 발의 피, 드넓은 바다의 좁쌀 하나와도 같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시거나 걱정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의 잎사귀를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꼭 받으셔야 합니다. 남들에게도 나눠 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받아야 합니다.

노아는 받은 소망으로 뭘 했을까요? 가족 전원을 불러 모아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되듯이 그 잎사귀를 자랑하고 서로 돌려보게 했을 것입니다. 절망 중에 소망의 빛줄기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다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감람나무 잎사귀를 그만큼 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소망을 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하면 희망을 전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감람나무 잎사귀를 내밀며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홍수의 생존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마른 땅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험이 많은 나를 비둘기 병사로 임명하기를 원합니다. 고통의 홍수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방주에 소망을 물어다 줄 기회가 있습니다. 아니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바라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인생의 위기를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분 자신이 비둘기 전령이 돼, 희망의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전달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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