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생명 살리고 사람 세우는 교회 본질 회복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장일권 목사(한우리교회)

공유의 디지털(Digital)과 소유의 아날로그(Analogue)가 플랫폼으로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블록체인(Blockchain), 사물인터넷(LoT)으로 초고속연결시대의 충격이 밀려오고 있는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은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와 변화를 이겨내고, 또 적응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목회현장인 교회는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요? 과연 그 대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성경입니다. 창조주이시며 구속주가 되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 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은 본질(本質)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교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주님이 세우고자 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본문에서 교회의 생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신앙고백으로 세워지는 주의 몸 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 하나’로 여긴다는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시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복음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주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으로 오셔서 구속 사역을 감당하시는 종말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위대한 복음적 신앙고백입니다. 주께서 이 고백을 한 시몬 베드로를 크게 기뻐하시며, 베드로(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선포하십니다(18절). 그 뿐 아니라 교회 세우는 사도권(천국열쇠)도 위임하십니다(19절).

이 말씀대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서 베드로의 전도복음 설교를 듣고 3000명이 세례를 받아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교회는 베드로에게 위임된 사도권을 강조하며 교황제도를 강화하는 핵심구절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베드로의 사도권을 거부하고, 베드로가 아닌 그가 고백한 복음적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베드로 사도 위에 세운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주장대로 복음적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것일까요? 먼저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핵심은 사도권에 대한 이해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사도권을 직임의 계승으로 주장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황인 베드로의 직임이 계승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의 사도직임 계승으로 이루어지는 교황제도는 성경에 근거가 없고, 또 역사성도 없습니다. 베드로의 사도직이 위임되기는커녕 예루살렘 공회의 수장(首長)의 위치에서 밀려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 15장). 또 역사적으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수위권(首位權) 논쟁으로 6세기 초에 그레고리1세에 의해 교황제도가 확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교회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입니다. ‘조직체 교회’는 18장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으로 조직교회의 교황권의 근거를 삼는 천주교(로마가톨릭교회)는 허구이며, 속임수인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장대로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짐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처럼 복음적 신앙고백을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를 영접한다는 것입니다(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로 구원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고백은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였음의 증거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된 주의 몸인 교회입니다. 주님은 머리되시고, 구원받은 자는 그의 몸으로 연합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영적전투를 암시하면서도 주의 한 몸 된 교회를 영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기 전에는 음부(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있습니다(엡 2:1). 마치 애굽의 파라오의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시켜 파라오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음으로 자기 백성을 삼으셨듯이, 마귀의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예수께서 이끌어 내어 생명의 권세를 쥔 자기의 몸으로 갖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는 음부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의 생명의 권세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교회(밖으로 불러내다)입니다. 또 교회를 큐리아코스(주께 속한 자)라고 합니다. ‘교회란 음부의 권세에서 불러내어 생명의 주와 한 몸으로 연합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음부(사망,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주의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고 있을까요? 본문에서 가르치는 대로 주의 생명으로 충만한 주의 몸으로서 교회로 회복된다면, 생존의 위기를 넘어 이 시대의 영적 등대와 방주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 천국열쇠 곧 사도권을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열쇠는 문자대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열쇠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복음으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고 교회에 사도권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도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천주교는 사도직 직임의 계승으로 이해하지만, 이 본문에서는 사도적 증거 즉, 복음 선포로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전한 복음증거의 권세(천국열쇠)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권입니다.

주님은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곧바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실 수 있으신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주님을 만나지 못한 자와 주님을 영접한 자의 고백을 대비시키려 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저들에게 천국열쇠를 사용하여 그들도 복음적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주님은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선교적 교회(Mission oriented Church)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마지막 단락이 지상명령입니다(마 28:18~20).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그의 책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현 시대의 의미와 목적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사도적 증언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을 연구한 학자들은 모두가 이 복음서를 지상명령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지상명령은 선교명령임과 동시에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제자 삼으라’는 주동사를 돕는 4개의 분사로 구성됨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서(전도)-세례 베풀고(정착)-가르쳐(양육)-지키게 하라(훈련)’로 된 분사는, 주의 교회를 세우는 목회 프로세스(process)로 구조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세우실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제시하시고, 이 선교적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그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고, 3년 동안 전도훈련을 시키신 후, 선교명령을 주시며 사도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는 전도자로 강림하시어 사도들을 통해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이 지상명령을 선교여행의 전략으로 삼고(행 15:36, 18:23) 선교하여 교회 세우는 사도직임을 감담하였으며, 또 목회철학으로 제시하였습니다(골 1:28). 그러므로 주께서 세우시기를 원하는 교회는 선교의 명령을 따라 전도하여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예배드리는 자들로 세우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전도하여 교회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외적인 상황으로 볼 때 교회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내적으로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본문에서 보여주신 교회 본질 회복을 위해 눈물로 헌신한다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반드시 회복하리라 확신합니다(행 15:15~18). 교회여! 다시 한 번 일어섭시다. 목회자여! 다시 한 번 생명 바쳐 헌신합시다. 그리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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