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그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신 22:1~7)
[이 주일의 설교] 그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신 22:1~7)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 김병국
  • 승인 2020.08.24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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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신 22:4)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신명기(申命記)는 출애굽을 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은 가나안 족속들과 혼재하여 살아가야 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명기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identity)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의 환경 가운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살아야 했던 ‘그 땅’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동화되어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그 땅의 백성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 수 있는 모습에 대해서 교훈하셨습니다.

긍휼–네 이웃을 사랑하라!

긍휼이란 남을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는 행동을 말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랑을 품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삶의 고단함은 성도의 삶에서 사랑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을 잃은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유 1:21)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긍휼이란, 하나님이 자격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신실하고 변함없는 은혜입니다. 긍휼은 악인이나 무례한 사람도 따듯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는 은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5:7).

본문은 그 구체적인 행동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형제의 소나 양이 길을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형제에게 돌리고, 또 형제의 나귀나 소가 짐을 싣고 가다가 길에서 넘어진 것을 보거든 또한 형제를 도와 그것을 일으키라 말씀하셨습니다(2-4절). 요즘은 바쁘고 자기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도 벅찬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와야 할 사람을 향한 우리의 눈은 곱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못 본척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고 “반드시”(1, 4절) 도우라고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을 것을 취할 때 둥지에 있거나 땅에 있는 어미새와 새끼, 어미와 그가 품고 있는 알을 같이 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미는 반드시 놓아주라고 하십니다. 새끼를 두고 도망가지 못하고, 품고 있던 알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미새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행동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7절)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기의 욕망과 안전을 이루기 위해 달리는 각축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들도 마음이 강퍅하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합니다. 사람의 삶이 풍성하고 행복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과 행동이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말을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남을 돕는 사람들이 더욱 행복감을 느끼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긍휼을 말씀하셨습니다(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히 여기는 것”이 입술로만이 아닙니다. 또한 추상적인 인식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치열하게 먹고 사는 영역에 있어서 실천해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레위기의 주제가 ‘거룩’이지만, 레위기 역시 그 거룩함을 결코 추상적인 영역이나 언어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을 것, 입을 것, 결혼 규정과 같은 실재적인 삶의 문제로 접근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룩–세상에 동화가 아닌 하나님을 닮아 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두 번째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거룩함입니다. 즉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의식적인 태도입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유니섹스(Unisex)라 불리는 패션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그 땅의 가나안 종교 의식에서 이방 여신을 섬기기 위해 제사장들이 여자 옷을 입었던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런 가나안 종교 의식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즉 가나안 문화와 가나안 종교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 살게 되면, 그 땅 문화와 섞여 사는 것을 거부하라는 뜻입니다. 거룩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나안의 음란한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의 교훈과 같이 바울 사도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 땅의 문화에 물들고 동화되지 않을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 술을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12절) ‘술’이란 장식을 위해서 옷의 소매 같은 곳에 다는 여러 가닥의 끈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망토처럼 된 옷을 입었기 때문에 네 모퉁이에 옷 술을 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왜 옷 술을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이 옷 술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하나의 장치였습니다.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이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 15:39)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 술과 그 사이에 있는 청색 끈을 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거룩한 옷 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세속화되어 있습니까? 믿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이나 결단이 없다면,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삶에 옷 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우리의 눈과 마음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는 이 시대의 옷 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기도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의 기도 시간은 우리 영혼이 세상에 떠내려가지 않고 주님께 고정하는 닻과 같은 것입니다. 정해진 기도 시간을 통해 성도는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상한 심령과 깨진 마음은 우리로 낙심하고, 우리를 본성의 사람으로 살도록 부추깁니다. 하지만 기도의 시간은 다시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룩한 옷 술의 역할을 합니다.

둘째, 예배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 의식이 많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온라인 예배가 자칫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마음이 없는 ‘더 쉬운 형식’의 예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해진 시간에 마음을 다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진 거룩하신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이라는 이 시대의 거룩한 옷 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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