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신앙의 도 (히 6:1~12)
[이 주일의 설교] 신앙의 도 (히 6:1~12)
  • 정재영 기자
  • 승인 2020.07.0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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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석 목사(광주 중앙장로교회)

분명한 신앙의 목표 향해 더욱 깊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1~2)

고상석 목사(광주 중앙장로교회)
고상석 목사(광주 중앙장로교회)

여러분! 신앙생활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가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길로 가야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바른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길은 어떻게 시작할까요?

에베소서 1장 4절 말씀을 보니까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만드시기 전에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어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 성도는 성령님과 이 땅 위에서 함께 살게 됩니다. 그 성령님을 모시는 분들은 바로 천국을 향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발은 이 땅을 밟고 살지만 우리의 영적인 소속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본향을 사모하고 살다가, 우리를 부르시는 날 하나님을 뵐 때 칭찬 받을 것인지 책망 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그 길이 신앙의 길인 것입니다.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인 니체는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사였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사건에 니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목사인 우리 아버지와 같이 좋은 사람을 데려가시는가?’하는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던 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기 남동생까지 그만 얼마 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니체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을 떠나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무신론자가 살아가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인생에도 단계가 있고,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정신발달단계(길)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첫 번째로 사람에게 낙타와 같은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순응하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사자와 같은 단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존의 관습과 규범과 권위에 의문을 품고 대항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로 어린 아이와 같은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순응하고 비판하는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단계입니다. 니체는 이런 인생의 길을 제시하고도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한 결과 무신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바이러스가 이렇게 창궐하여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힘겨워도 더욱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는 것이 성도의 길이므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면 1~2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그러므로’라고 시작을 합니다. 신앙의 길을 성도들에게 제시할 때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 길을 믿음으로 가야 하는데, 그 길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이전의 길로부터 되돌아가버리는 일이 당시 성도들에게 벌어졌습니다. 처음 성령 받을 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 길로 걸어가던 중에 의문이 생겼던 것이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그 점을 책망하며, 지금까지 잘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 길을 이탈하지 말고 완전한데로 더욱 나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2절 말씀의 배경에는 앞서 5장 11~14절의 말씀에 언급된 구약인물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 말씀에 살렘 왕으로 소개된 인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지만, 편지의 수신자들이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5장 12절에는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해서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고 탄식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고, 또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사가 많은데도 신앙이 자라지를 못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지 못했을 뿐더러, 행동들을 보니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수준으로 내려와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배경들을 설명한 후에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의 말씀과 같이 완전한 데로 나아가서 성숙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기를 요청합니다. 그렇다면 그 신앙의 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1. 신앙의 지향점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어디를 향하여 신앙생활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겁니다. 땅에 심겨진 씨앗이 우리가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움도 트고 점점 솟아나는 것처럼 신앙도 그렇게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교회를 출입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는 깊이 있는 신앙으로 가지 못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실정입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잘 못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지향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으로 도전을 받고 실천하며 나아가는가? 이 부분을 점검해야만 합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서 내 상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얼마나 건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영적인 건강과 영적인 균형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본문 2절 말씀대로 완전한데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가정을 비롯해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를 점검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육신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우리의 영혼마저 쇠약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 앞에 서는 날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2.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자기의 삶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의미이겠죠. 많이들 공감하시고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고백이 너무 익숙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부정적으로는 더 이상 긴장도 변화도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는 의미임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남녀 사이에서도 서로 연애를 하다보면 얼마나 상대방을 향하여 잘하겠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온갖 열심을 다합니까?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고 고백했던 그것들 때문에 한동안은 상대에게 잘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다보면 점점 익숙해지면서 흐트러진 모습도 생겨나곤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긴장도 사라지고 변화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익숙한 것, 안정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함과 안정만 좇다보면 바른 길에서 이탈하여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도전을 받지 못하기에 삶에서나 신앙에서 진보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 종교개혁은 분명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던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의 자유를 빌미삼아 방종과 게으름, 영적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개신교 신앙생활을 지도하기 위해서 1729년에 ‘대교리문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 서문에서 루터는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들이 믿고 생각하는 바와 달리 당신들의 지식수준은 바닥입니다. 혹여 이전에 잘 알고 있었을지라도 이건 내가 다 아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고 강하게 외쳤습니다.

얕은 물가로 빙빙 돌기만 해서는 우리는 초보적인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저 깊은 은혜의 바다를 헤엄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겸손히 말씀을 배우고, 또 묵상하며 주님께 기도하여 도움을 구합시다. 신앙의 목표를 잘 잡아서 주의 도를 잘 행하는,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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