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부활의 소망 (요 11:1~4)
[이 주일의 설교] 부활의 소망 (요 11:1~4)
  • 기독신문
  • 승인 2020.04.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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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4)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코로나19의 역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류의 이동이 멈춰 섰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위축되고 있는 반면, 전 세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8만명 이상이 생명을 잃고 인간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만, 그 결과 오히려 지구촌의 공기가 맑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의 산업 활동은 코로나19로 인해 최대 40%가 줄었습니다. 석탄 소비도 최근 4년간 최저치를 기록하고, 석유 소비도 3분의 1이상 줄었습니다. 이 기간에 중국의 탄소배출량도 25% 이상 줄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대기 질 개선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미세먼지 매우나쁨인 날이 단 이틀에 그쳤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18일이었습니다. 중국이 코로나19로 인해 석탄을 덜 쓴 영향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멈추자 지구가 건강해진 것입니다.

어둠 속의 횃불

코로나19 사태에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와 수고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며 각기 있는 곳에서, 골방에서 기도로 이 세상을 방어하고 수호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믿음의 횃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어떤 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로, 그에게는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동생인 마리아는 가장 아끼던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던 바로 그 자매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누군가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께 가서 그들의 사정을 아뢴 것입니다. 그런 헌신이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의 헌신과 간구가 모였을 때 치유가 시작됐습니다. 나사로의 친구가 예수님께 나사로의 병세를 알릴 때 사용했던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편에 서서 그 사람의 불완전한 사랑을 기초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세주의 완전한 사랑을 근거로 말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병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능력은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병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지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두려워하며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주님께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본문 4절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멈추고 그 익명의 심부름꾼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8장 4절을 보면, 제단 곁 금향로에서 나오는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들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하나님을 움직이게 합니다. 기도의 신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에서 기도할 때 하늘에서 행동이 개시된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신비스런 일입니까? 우리가 말할 때 예수님께서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시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손 안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헤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피하려 한다 해도 죽음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붙잡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의 손으로 넘겨주어야 합니다. 장례식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 “떠나다, 별세하다, 앞서 가다”입니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요? 세상과 이별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보다 앞서 갔다는 것이 얼마나 앞선 것일까요? 죽음 이후에는 우리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앞서 가신 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죽음에 대해서는 정말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도 그런 질문들이 제기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묻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미 앞서 간 사람들을 생각할 때 평안하기를 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말씀하셨듯이 장례식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주검 옆에서 조용히 눈물짓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확신의 말씀을 주십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14)

소망 없는 슬픔에서 희망찬 슬픔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 없는 슬픔을 희망찬 슬픔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심으로써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신 분은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소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그리고 앞서 간 사람들과 함께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우리가 몸을 떠나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서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이 계시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을 하신 후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신 후 나사로가 있는 무덤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이 여전히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있었던 부활의 실증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사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바라기는 이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속에 깃든 어두운 생각들, 비관적인 생각들, 두려운 생각들, 절망적인 생각들이 다 떠나가고 새로운 소망이 시작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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