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멈춤, 새로운 미래의 시작(행 16:6~15)
[이 주일의 설교] 멈춤, 새로운 미래의 시작(행 16:6~15)
정찬용 목사(주님의길교회)
  • 김병국
  • 승인 2020.11.24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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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위한 멈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 기회입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정찬용 목사(주님의길교회)
정찬용 목사(주님의길교회)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대처합니까? 기다립니까? 돌아갑니까? 아니면 다른 길을 찾습니까? 아마 길이 막힌 원인을 우선 파악한 후, 이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막힘과 멈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두가 영적, 정신적, 시간적, 재정적 손해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잘 모른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멈추고 있을 때 우리가 놓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멈출 때 멈춰라

멈추라는 신호가 있을 때 멈춰야 합니다. 바울 일행은 2차 전도여행 중 멈춤을 경험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6절),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7절).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에 도착했지만, 역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수일을 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2절). 왜 멈춰야 했을까요? 바울 일행이 아시아가 아니라 바다 건너편 마게도냐에서도 복음을 전하길 원하셨기에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마게도냐 빌립보 성에서도 익숙한 방식으로 사역할 수 없었기에 바울은 스스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첨단 핵잠수함이라 할지라도 바다 속에서 90일 이상 작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음식이나 연료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북극성을 향해 방위를 재설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자력 때문에 90일 정도가 지나면 항법 장치들이 오차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반드시 모든 임무를 멈추고 수면으로 올라와서 멈춘 후, 북극성을 추적하고 그 기준점에 모든 게이지를 다시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오차 없는 임무 수행을 지속하기 위해서 멈춤은 필수요소입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길 원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여 시동을 끄고 운전대를 내려놓길 원합니다. 속력을 내지 않고 멈출 때가 주님과 깊이 교통할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한 멈춤은 몸과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시간이 제공해 줍니다. 삶을 정돈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혹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흐트러져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지금 분주함을 내려놓고 멈춰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바울 일행이 멈추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멈췄을 때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드로아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도 찾게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도 멈춘 상태에서 그는 기도할 곳을 찾았습니다. 멈출 때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은 멈추지 말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멈출 때 분별하라

멈출 때에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멈춰 있는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멈추고 있었을 때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확인했습니다(10절). 이전까지는 주로 안식일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세워 놓은 회당에서 남성들을 향하여 말씀을 전해왔지만, 빌립보 성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갔고,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났으며, 주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음을 보게 되었습니다(12~14절). 멈춤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섭리를 발견하고, 그의 뜻을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멈춰질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까지 멈추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에 의해 말씀과 기도, 교회와 환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분주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인 되시는 주님이 그것을 정말 원하고 계시는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무더운 여름에 바쁜 지인을 돕기 위해 지인을 대신하여 홀로 지인의 고구마밭을 찾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잡초를 모두 제거해 주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날 지인과 함께 고구마밭에 갔는데, 지인은 칭찬 대신에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밭은 지인의 고구마밭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옆 고구마밭에서 헛물을 켰던 것입니다. 혹 우리도 헛물켜고 있는 것은 없는 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막으시기도 하셨지만, 새로운 것들을 여시기도 하셨습니다. 아시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를 여셨고(10절), 육로가 아니라 해로를 여셨으며(11절), 유대인의 회당에 있는 남성들이 아니라 강가에 있는 여인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습니다(14절). 루디아의 집안의 문도 여셨고(15절), 그 열린 집이 빌립보 교회의 교두보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길이 막혀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열어두신 길이 분명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 함께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 보길 원합니다.

멈출 때 변화되라

막힐 때가 변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바울은 멈춤을 통해 자신의 사역 방향과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사역 현장이 익숙한 아시아에서 생소한 마게도냐로, 대상을 유대인 남성들에서 한 여성에게로, 장소를 회당 중심에서 강가 길가 감옥으로 바꾸었습니다. 멈춤이라는 장애물을 통해 방향, 속도, 대상, 방법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바꾼 것입니다. 멈춤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요?

멈춤을 통해 내려놓아야 하거나 포기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변화되어야 할 부분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 동참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멈춤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도 우리는 변화해야만 합니다. 확신하고 있었던 계획들,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존의 가치관, 성공했던 경험들, 변화 자체를 싫어하는 본성을 바꾸길 원합니다.

얼마 전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제공한 ‘한국인의 종교에 대한 인식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는 ‘싸늘한’, ‘거리를 두고 싶은’, ‘사기꾼 같은’, ‘이중적인’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 종교계의 문제점으로는 종교계 자체 ‘부정부패’와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최근 발표한 총회의 ‘위드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 미래전략 수립 조사결과’에서도 역시 한국사회는 종교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종교인의 생활 태도, 종교 지도자들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꼽았습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은 멈춤을 통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변해야만 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생명 걸고 지켜내야 합니다. 하지만 본질 외의 것들은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믿음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멈춤, 새로운 미래의 시작입니다

멈춤은 우리 모두에게 여러 어려움과 위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멈춤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리는 기회로 삼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과 뜻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님에 의해 성경과 기도, 교회와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분별하기 원합니다. 멈춤으로 사회와 이웃이 교회에 원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귀담아듣길 원합니다.

우리는 멈췄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그 하나님의 현장에 동참하길 원합니다. 단, 우리의 믿음의 결단과 과감한 변화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멈춤은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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