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진심과 거짓말(삿 16:13~17)
[이 주일의 설교] 진심과 거짓말(삿 16:13~17)
이명진 목사(보배교회)
  • 기독신문
  • 승인 2020.06.16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짓은 하나님과 함께 한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네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면 되리라 (삿 16:13)

이명진 목사(보배교회)
이명진 목사(보배교회)

말 한마디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방역 당국에서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할 때 어떤 사람은 사생활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여 감추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던 반면, 어떤 사람은 의심 증상이 있을 때부터 더욱 철저하게 개인 방역수칙을 지키며 자신의 동선을 꼼꼼히 적으며 진실을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했습니다. 한 사람은 수많은 감염자를 낳으며 나라를 전염병 위험에 빠뜨렸지만, 또 다른 사람은 자신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수고를 감내하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삼손은 진실하게 살아야 할 사람이 거짓에 사로잡혀 살 때, 그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불임부부 마노아에게 찾아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려줍니다. 그는 흥분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사자에게 어떻게 길러야 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질문합니다.(삿 13:12)

마노아 부부는 좋은 양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훌륭한 자녀로 길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실인 서약만 잘 지키라 합니다. 좋은 양육이란 어떤 규범이나 규칙을 잘 지키는 것보다 그 중심에 하나님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에 큰 관심을 가졌던 부부가 아이 이름을 ‘삼손’이라 짓습니다.(삿 13:24) ‘작은 태양, 태양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태양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까요? 삼손이 태어날 때는 이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지 않습니다.(삿 13:1)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왕래하며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녀를 잘 양육하기 원하면서 ‘작은 태양’이라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아이를 바른 신앙으로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삼손이 성장하여 블레셋의 딸을 결혼 상대자로 부모에게 소개합니다. 부모가 반대해도 자신이 그 여자를 좋아하니 자신을 위해 데려오라고 떼를 씁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결혼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신부와 그녀의 아버지가 불태워집니다.(삿 15:6) 얼마나 끔찍한 비극입니까. 겉으로 보기에 마노아 가정은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처럼 보이지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과 세상을 줄타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사 삼손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사기 13장에서 16장 말씀을 읽어보면 삼손은 개인적인 이유로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합니다. 심지어 성욕에 중독된 채 여인에게 끌려갑니다. 본문은 삼손에게 세 번 속은 들릴라가 “사랑한다 말하면서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항변합니다.(15절) 정말 사랑한다면 제발 진실을 말해 달라 요청합니다. 날마다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습니다.(16절) 사랑한다는 사람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거짓 사랑을 사랑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삼손과 들릴라는 불타는 사랑을 하지만 서로의 관심사는 숨기고 이기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삼손은 사랑한다(4절)고 말을 하면서도, 결혼은 뒤로하고 잠자리만 같이합니다. 정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가사의 기생을 만났을 때 16장 1절의 동사를 보면 “가서 보고 들어갔다”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욕을 채워줄 사람, 보기에 좋은 사람이면 그냥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자신의 필요만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들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삼손을 위기에 몰아넣는 방법을 찾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의 힘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결박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지 묻습니다.(6절)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사랑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약속한 돈과 국가의 원수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는 영웅담, 즉 ‘부와 명예’를 기대한 것입니다. 거짓 사랑입니다.

우리도 거짓 사랑을 참사랑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첫 출발부터 관심사가 다른 데 같은 것처럼 속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정직하면 손해 본다. 진실하면 바보 취급 당한다. 그러니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라”고 합니다. 서로 불편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살라고 유혹합니다. 마이클 윌코크는 <사사기 강해>에서 “세상과 교회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은 있을 수 없다. 갈등이 없다면 세상이 정복한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과 평화할 수 없고, 믿지 않는 사람과 동일하게 살 수 없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입니다.(약 4:4) 관심사를 속이며 접근하는 세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품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둘째, 거짓말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거짓말은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씩 반복되었습니다. 실수가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여인과 위험한 게임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힘의 근원을 묻고, 결박하여 굴복시킬 방법을 묻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삼손이 거짓말을 하고 사랑을 나눈 후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단잠을 잘 때마다 위기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블레셋의 중무장한 군인들이 공격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삼손은 위험한 사랑 게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자신감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문제없이 지나갔고, 위험의 순간마다 벗어났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입니다. 또한 삼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욕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반복하여 겪으면서도 끊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은 중독의 문제입니다. 무언가에 사로잡혀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무언가에 중독되면 그것이 주는 혜택 때문에 끌려갑니다. 누가 보아도 위험한 일인데 끊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이 주는 혜택 때문에 안전하고 평안하다 착각합니다. 거짓말은 위험한 일입니다. 말을 잘하여 그 순간만 넘기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살고 진심을 표현하며 살기보다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세상과 줄타기만 잘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들릴라처럼 포기하지 않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날마다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하고 괴롭힙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무언가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중독된 것이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길인 것 같아도 망하는 길입니다. 속지 맙시다. 성도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언가에 중독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의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입니다. 한시적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평생이 드려진 나실인입니다. 나실인 서약을 마음에 품고 평생 머리를 깎지 않고, 포도주를 포함한 포도의 산물을 먹지 않으며, 사체와 같은 부정한 것에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은 계속되는 들릴라의 요청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냅니다.(삿 16:17) 거짓 사랑에 눈이 멀어서 진심을 드러냅니다. 말하지 말아야 할 비밀을 누설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듯이 성도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삼손은 생활 중에 드문드문 나실인 서약을 어깁니다. 죽은 사자의 몸에 있는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삿 14:8~9), 죽은 나귀의 싱싱한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입니다.(삿 15:15) 그래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블레셋을 심판합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습니다. 그러니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흠이 있어도 사용하며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오해하고 자기 길을 걸어간 삼손의 결말이 무엇입니까? 두 눈이 뽑히고 옥에 갇혀 맷돌을 돌리는 동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삿 16:21) 진심은 숨기고 거짓 사랑에 끌려간 결과입니다.

우리도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흠이 많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은 은혜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 손에 쓰임 받고 있다고 안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 안에 있을 때 더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진심을 말하며 살기 원하십니다. 적당한 타협이 성공 같아 보이고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함께한 진실을 이기지 못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