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목사(보배교회)

위기의 어둠이 깊을수록 화평의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수 1:6)

이명진 목사(보배교회)
이명진 목사(보배교회)

위기를 한자로 보면 ‘위험한 危’와 ‘기회 機’입니다. ‘위험하지만 기회’란 뜻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사람들은 낙심부터 합니다. 물론 갑자기 닥친 위기 앞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위기가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위험한 상황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기의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좋은 기회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오늘 말씀은 우리가 만나는 고난이 왜 유익인지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죽음 이야기로 시작합니다.(1~2절)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지도자를 떠나보내는 위기 상황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출애굽부터 광야의 40년을 지나오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동고동락했던 지도자입니다. 백성들이 고민거리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함께 상의했던 사람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함께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비교할 대상이 없는 뛰어난 선지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났던 선지자이며, 그 이후에는 그와 같은 선지자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 말씀합니다.(신 34:10~12)

그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그들 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가나안 정복을 바로 눈앞에 둔 중요한 시기에 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앞이 막막한 순간입니다.

지금 우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생명을 위협하고 삶의 기초가 되는 경제를 흔들고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긴 일상까지 바꿔놓고 있습니다. 나라의 당면한 과제와 민생을 위해 입법 활동을 해야 할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더 영향력 있는 상임위원회를 맡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국민보다는 자신이 속한 당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은 대북전단을 빌미로 우리나라와 모든 관계의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소통을 위한 모든 통신선을 끊고 필요하다면 군사적 행동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남북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고 합의했던 비무장지역도 요새화할 것을 예고하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더욱 6·25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도록 냉전 구도를 해체하지 못한 채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중요한 시기에 가장 의지하고 따르던 지도자를 떠나보내는 광야의 이스라엘과 같은 형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들과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위기가 기회가 되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 자리에 모세 곁에서 수종들었던 여호수아를 세웁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2절) 하십니다.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그 땅으로 가고”(2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내가 너희에게 주었고”(3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않을 것이며”(5절),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차지하게 하리라”(6절)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 땅으로 가라”(2절) 하십니다. 앞이 캄캄한 순간 내가 모든 것을 할테니 나를 믿고, 나만 바라보며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힘과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갈수록 틈새가 벌어지는 북한과의 관계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이 당면한 문제들도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경제가 얼어붙고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 마음마저 멀어지는 때입니다. 이럴 때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모든 일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눈에는 앞이 캄캄하고 길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과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앞이 캄캄해서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까지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살피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모세에게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3절) 말씀하십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인 지리적 위치도 말씀하십니다.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4절) 말씀하십니다.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약속한 그 땅을 분명히 차지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적들과 싸울 때 걱정하지 않도록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어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약속을 깨뜨리거나 마음대로 변경하시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 때일수록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의 지혜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때도 다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함으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지금은 앞이 캄캄합니다. 우리 민족의 신앙의 불꽃이 타올랐던 평양에 언제 찬송 소리가 흘러넘칠지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평화와 통일을 소망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 민족으로 이 땅에 허락하셨습니다. 인간의 이념과 이기심이 서로를 나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둘을 하나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화평의 하나님입니다. 한 민족이 서로 싸우는 것보다 서로 이해하고 화평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함께 힘을 모아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 말씀하십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뛰어난 영웅 한 사람에 의해 가나안이 정복되고, 약속의 땅이 주어지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 비하면 여호수아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면 한 사람의 영웅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약속의 말씀을 따라 힘과 지혜를 모아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고 혼자 힘쓰는 것보다 더불어 수고함으로 더 좋은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전 4:9) 함께 힘을 모아 더불어 사는 것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 아담도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구국을 위해 뜻을 함께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독립은 꿈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조국을 위해 믿음의 헌신을 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한반도의 평화도 꿈과 같은 일이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의 우리가 평화와 통일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꿈꾸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북한 이탈주민들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며, 남북의 거리가 좁혀지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저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들이 먼저 작은 손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여명이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세가 떠난 자리,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볼 때 어둠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6·25전쟁 후 70년이 흘렀지만 평화와 통일의 소망보다는 전쟁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열심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주관하시며 캄캄한 어둠 가운데 빛나는 한 줄기 빛을 비추시는 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고 죽고 떠날지라도 영원히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그 약속을 따라 함께 걸어갈 때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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