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설교] “이 여인을 보라!”(요 4:1~24)
[이 주일의 설교] “이 여인을 보라!”(요 4:1~24)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 김병국
  • 승인 2020.08.17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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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깨뜨려 해답을 갖고 계신 주님께 나아갑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류명렬 목사 (대전남부교회)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생수를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인생의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며 그 배에서 솟아나는 생수는 ‘이 땅의 물’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성령입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것이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남이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나는 영적인 출생임을 깨닫게 하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생수는 이 땅의 물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를 가능하게 하시고(요 4:23~24),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시며(롬 8:2, 엡 6:17),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하시며(겔 36:26~27), 하나님의 사람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5:22~23)
 
예수님이 만난 여인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주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 가운데 말씀하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의 증거입니다. 니고데모는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 길'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여인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보게 합니다. 그는 여러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대인과 유대사회에서는 철저하게 배제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몇 번의 결혼의 실패를 경험한 아픔이 있었고,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관계의 단절과 고립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약속에 있어서는 외인이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엡 2:12). 그러나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그의 인생에 막힌 담이 무너지고, 참된 실체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여인을 보라!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님과 사라미아 여인의 대화에서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대화 중에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말씀을 듣게 되면 자연스러운 결과가 믿음의 성장입니다. 정체가 아니라 놀라운 믿음의 성장이 있음을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특별히 예수님을 부른 호칭의 변화에서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부른 첫 호칭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한 남자’에 불과했습니다. 여인이 주님을 부른 두 번째 호칭은 “주여”였습니다. 여기서 ‘주여’라는 말은 구원론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경의 의미로 부른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지나온 삶의 여정을 아시는 주님을 “선지자”(19절)라고 부릅니다. ‘선지자’가 세 번째 호칭이었습니다.

마지막 호칭은 “그리스도”입니다.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깨달은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 사마리아 여인만이 아니라, 그 수가성의 사마리아 사람들도 믿음의 성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청하여 이틀 동안 함께 한 저들은 말씀을 통하여 믿는 자가 많아지고, 예수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을 알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요 4:42) 그들의 믿음은 기적과 이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를 만나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도 기적에 이끌리어 다니며 믿음의 고백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아무런 기적도 보지 못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깨달아 알고 고백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중심에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습니다.

대화 속에 감추어진 진실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이 그냥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기 쉬운 사실인데, 이 여인의 믿음의 성장에는 ‘자기 깨뜨림’이 있었습니다.

첫째, 주님께 나아가는 자기 깨어짐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수’를 말씀하셨을 때에 여인은 자신의 필요를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소서!” 여인은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고, 즉 자신이 그런 물이 필요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그런 물을 내게 주소서’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요즘 필요는 인정하지만,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주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요청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필요를 인정하고, ‘믿음의 빈손’으로 나아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익숙하고 무디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둘째, 솔직함입니다.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시고 주님은 이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실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17절). 여인의 솔직한 대답입니다. 그는 솔직함으로 주님 앞에 섰던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주님께 얼버무리거나 거짓으로 대답할 수도 있었습니다. “네 제 남편은 지금 출타중입니다.” “제 남편은 몸이 불편해서 지금 이곳으로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숨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대답이 참되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함은 진리로 들어가는 입구, 진리의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안에서 솔직함을 담보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전락시키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함과 진실은 우리 믿음을 성장하게 합니다.

셋째,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걸리는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질문 하나를 합니다. 예배의 장소 문제였습니다. 이 질문은 여인이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제 전환용으로 던진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진실함으로 자신을 주님께 아뢰었고, 주님은 그녀의 대답이 참된 것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대한 질문은 이 여인의 신앙에 있어서 소위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자기 조상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녀에게는 풀리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믿음 생활하다보면 ‘걸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과의 문제, 신앙의 회의와 의문, 그리고 은밀한 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오지 않고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그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믿음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앙의 성장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걸리는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답을 가지고 계시고, 주님께 해결책이 있습니다. 예배의 문제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영과 진리입니다. 즉 성령 안에서 그림자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실체적인 예배가 참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자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에 생장점이 터진 것입니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걸리는 문제’는 주님 앞에서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생수와 같은 성령을 주시고, 우리 믿음을 자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를 깨뜨려 주님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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