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크리스천 랩소디] 150명
[주필칼럼-크리스천 랩소디] 150명
김관선 목사(주필)
  • 기독신문
  • 승인 2020.04.28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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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의 수’(Dunbar’s Number)는 ‘150’이다. 진화론적 견해를 가진 학자이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지지하지는 않지만 사회학자로서 정리한 이 수에는 수긍이 간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최대치를 뜻하는 것으로, 요약하면 인간의 뇌가 관리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15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호주나 뉴기니 또 그린란드 등에 거주하는 원시 부족의 인원을 조사하니 마을 주민의 수가 평균 153명이라는 데서 착안한 이론이다.

군 복무 경험으로 아는 중대병력이 150명 정도인 것도 이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다. 중대장 한 사람이 효과적인 전투를 지휘하기 위한 최적인원을 그 정도로 보는 것이다. 아무리 발이 넓어도 사회적 관계는 150명이 한계라는 ‘던바의 수’를 생각하다가 문득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수를 세다 포기했다. 150명씩 한 묶음으로 처리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번호 중 1년에 한 번이라도 누르는 것이 몇 개일까를 헤아려보니 별 생각 없이 저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즐겨찾기’ 목록이 따로 있기는 하다.

던바에 의하면 개인적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는 1~2명,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친구도 3~5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공감집단’이 있다. 내가 죽었을 때 심리적 충격을 크게 받을 집단을 의미하는데 10~15명 정도라고 한다. 어느새 내 생각은 그리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몇 사람이나 충격 받을지.

1인가구가 대세를 이루는 점차 외로워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욱이 ‘비대면’이 일상화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익숙해지니 더욱 그렇다. 전화번호 목록에 저장된 이름은 많아도 대부분 얼굴은 못 보고 살지 않는가. 그러니 아는 사람 많은 게 자랑은 아니고 번호를 따는 것만으로 뛰어난 사회성을 인정받는 것은 더욱 아닐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또 한 가지 생각, 한 교회의 적정 교인 수는 얼마? 150명? 그것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150명씩 묶는 그룹 150개쯤이면 욕망을 채울 수 있을까? 나의 ‘공감능력’을 벗어날 만큼 많은 사람을 끌어안은 채 버걱거리는 난 제대로 사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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