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1947년, 알베르 까뮈는 그의 작품 <페스트>에서 오랑시를 휩쓴 전염병이라는 절망과 비극의 처절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맞서 승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그 승리의 힘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연대이다. 의사 르외를 중심으로 보건대원 타루, 파늘루 신부 그리고 오랑시를 탈출할 길만 찾던 기자까지 연대한다.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도시 봉쇄로 발이 묶인 기자 랑베르는 위험을 피해 도망갈 생각만 하던 끝에 벗어날 방법을 얻지만 전염병을 대항하는 연대에 합류한다. 그것이 페스트를 극복해 낸 것이다.

각각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의 연대, 더욱이 이 도시와는 전혀 관계없던 기자까지 그냥 떠나 버리면 평생 부끄러워할 것 같아 함께한 이들이 최악의 전염병을 이겨냈다.

지금 우리도 연대의 힘을 보고 있다. 그렇게 연대한 누군가의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연대에 나 역시 있다. 반드시 거기 있어야 한다. 랑베르처럼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할 생각을 하면 훗날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힘으로 연대해야 한다.

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병행, 출입 성도들의 열 체크와 참석자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모바일 태그. 또 힘들어도 마스크를 쓴 채 찬송하기. 이것이 교회와 세상의 선한 연대이리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당신만의 천국’으로 비아냥거림을 당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연대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여러나라가 문을 닫았다. 자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가 안전해도 이웃나라에서 번지는 전염병은 결국 내 나라까지 위협한다. 그래서 람데시비르를 내 나라만 쓰겠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다.

유대든 사마리아든 어디든 다가가서 연대할 때 세상은 변했다. 좋은 목적에 공감하면서 손을 잡는 연대가 세상을 바꿔왔다. 그것이 교회를 위협하는 영적 바이러스도 이겨낼 것이다. 도와 달라는 손조차 내밀지 못하는 작은 교회들이 있는 걸 눈치 채고 월세를 지원하는 것은 이미 큰 연대를 만들어 냈다. 사탄이 잡고 흔들 약한 곳에 힘을 보탠 것이다. 사탄이 이웃을 나 몰라라 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교회를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뿐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 앞에서든 이기는 길은 연대! 힘을 모으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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