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크리스천 랩소디]궁금했던 홀 선교사의 마음
[주필칼럼-크리스천 랩소디]궁금했던 홀 선교사의 마음
  • 기독신문
  • 승인 2019.05.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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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선 목사

로제타 홀(Rosetta Hall) 선교사님을 존경하며 또 많이 말하고 다녔다. 1890년 25살, 여성 홀로 의료사역을 위해 조선에 온다. 미국에서 의사로서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이 땅에 쏟을 눈물을 알기나 했는지 깜깜한 조선을 사랑했다. 이듬해 약혼자인 의사 윌리엄 홀(William) 선교사가 들어와서 결혼한다. 부부는 평양선교를 위해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핍박 속에서 의료봉사와 교회개척을 한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 후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남편 윌리엄이 병으로 이 땅을 밟은 지 3년 만에 천국에 간다. 그때 로제타의 태중엔 7개월 된 둘째 아이가 있었다. 남편 잃은 로제타는 미국으로 건너가 딸을 낳은 후 두 아이를 데리고 1897년 돌아온다. 남편 생각으로 기홀병원을 세우고 부인과장으로 사역한다. 이때 사랑하는 딸 에디스가 이질로 희생되지만 그녀의 사역은 45년간 이어진다. 김점동(박에스더)이라는 여성을 공부시켜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를 만든다.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은 토론토 의대에서 공부한 후 의사였던 부인 메리언과 함께 이 땅에 와서 16년간 결핵요양병원을 세우는 등 사역을 한다.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독립자금을 모았다는 이유로 1940년 일제에 체포, 추방되었지만 인도로 가서 1963년까지 결핵퇴치사업을 펼친다. 양화진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의료선교사 가족이다. 이 땅의 오늘이 있게 한 분들이다.

며칠 전 ‘진흙쿠키’로 알려진 아이티(Haiti)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홀 선교사 가족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교회가 파송한 의료선교사의 노력으로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 세워진 클리닉센터(Grace Clinque). 비포장 산길을 터덜거리며 가다서기를 반복하다 올라간 곳에는 까만 피부에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가진 2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개원기념 예배에 참석한 그 눈망울들은 우리가 선교사에 의해 병원을 처음 접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할까?

봉지쌀과 티셔츠, 공책과 과자 몇 개, 작업용 실장갑 등을 담은 개원기념 에코백을 받아 손에 쥔 엄마, 아빠와 또 그것을 목에 건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에는 꿈도, 삶의 무게도 함께 보였다.

화장실도 갖추지 못한 클리닉센터. 하루 한 끼 먹기에도 바쁘지만 개원예배에서 춤추듯 찬양하는 그 친구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앞으로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조선 땅에 왔던 홀 선교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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