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짐을 지려면 힘이 필요하다. 짐이 무겁다면 더욱 큰 힘이 필요하고. 그러기에 누구든 자기 힘에 맞는 적당한 짐을 져야 한다. 과도한 짐은 힘을 써볼 새도 없이 짐 진 자를 무너지게 한다. 그래서 역사학자 A. J. 토인비는 ‘중용’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자기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만한 짐을 말한다. 그런데 힘에 부치는 짐도 자주 지다보면 어느새 없던 힘이 생기고 또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질 수 있는 요령이 늘기도 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어린아이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다 보니 지적 힘, 육체적 힘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인 요령도 익히는 것이다. 이렇게 힘을 키운 결과 세상을 짊어지고 또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짐을 잘 지는 요령 중 하나는 함께 지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못하던 것을 둘, 셋의 힘을 모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된다. 또 무조건 모든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질만한 짐을 선별할 수 있는 분별력도 필요하다. 아무 짐이나 지지 않는다. 내게 적절한 짐을 감당하고 맡은 짐이라면 책임지는 자세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좀 과하다고 싶어도 짊어져야 할 것이라면 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내 짐조차 제대로 지지 못하면 나는 세상의 짐이 돼버린다. 주변에 감당도 못하면서 과도한 짐을 맡은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질만한 짐을 져야 하는데 욕심만 앞세워 오히려 일은 망치고 짐은 깨져버린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든지, 짐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내게 힘이 되고 또 다른 이는 내게 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주님은 내게 감당할 수 있는 짐만 지우신다. 그리고 짐을 맡길 때는 필요한 힘을 주시고 또 내가 버거워할 땐 짐을 대신 져주시기도 한다. 주님께서 주신 짐이 있다. 사명으로 여겨야 할 그것은 나의 존재를 빛낸다. 그러기에 평생 짊어져야 하지만 결코 싫지 않다.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께서 맡기신 짐이라면 지혜롭게 감당해야지. 혹시라도 그 짐을 망가트리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잘 지고 가야지. 나는 주님께서 주신 짐을 잘 지고 있는 것일까? 난 주님께 짐일까, 아니면 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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